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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May 06. 2022

내일은 오늘보다 나쁠 것이다

다 키웠습니다만 함께 살고 있습니다/청년 자녀 독립 불능 시대

마스크 의무화 이후 566일 만이다. 마스크 없이 거리를 다녀도 된다는 발표 다음날, 시내 음식점들은 10인 이상 단체 손님들로 자정까지 북적였다. 20여분 운전하는 수고로움을 들이더라도 그곳에 가서 식빵을 사는 베이커리에 브런치 빵이 동이 났다. 매장엔 족히 20여 명은 됨직한 여자들이 촘촘히 앉아 계모임 중이었다. 오랜만의 떠들썩함이 반가웠지만 익숙한 옛날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 또한 반갑지 않았다. 엔데 믹 우울증(endemic)이라 하던가?  개학 첫날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과 시멘트 천정에 부딪쳐  신경을 날카롭게 긁던 기억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 소리가 소음처럼 들린다. 사람 참 간사하다.

야외 마스크 의무 해제 발표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쉽게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스텔스 오미크론을 대체할 새로운 변이가 국내에서 발견됐다는 기사가 인터넷 뉴스포털 창에 나란히 뜬다.  "마스크를 벗으면 이제 모든 게 괜찮아질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칼국수 한 그릇에 9천 원, 국밥 한 그릇이 만 원. 밥 한 끼 만원 시대다. 러시아 팜유 수출 중단 이후 기대했던 인도 밀 작황이 이상기온으로 열매를 맺지 못해 밀 수확량이 떨어졌다. 전 세계 식용유, 밀가루, 기름 파동이다. 재래시장하면 떠오르는 광장시장 빈대떡 가게에서 3만 원에 들여오던 식용유 한통에 6만 원에 납품된다고 한다. 1리터당 2천 원이 넘는 기름값에, 곡물 사료값 급등에 먹거리 값이 청정 부지 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는 서막에 불과하다고 한다. 러시아 전쟁으로 온 지구촌이 들썩이고 있다. 전쟁 여파도 크지만 정작 큰 일은 기온 상승에 따른 기후변화가 이끄는 연쇄 피해라는 얘기는 이미 상식처럼 알려진 펙트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사라진 미래이다.


오늘날 20대는 더 집단적으로 억울하고 암울하다. "공정하지 않다" 책에서 20대 90년 대생들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시대 환경적인 위기는 물론  소득, 자산, 주거처럼 삶을 살아가는 데 바탕이 되는 문제들에서 가장 바닥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높은 교육을 받고도 2030 청년 세대는 노동시장에서 최악의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정규직 같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아르바이트 수준의 저소득자로 살수 밖에 없고 주택시장은 월세로 바뀌면서 살 집조차 구하기 힘들어졌다. 청년세대들이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사는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부모세대의 지위가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어 '게임의 법칙'처럼 굳어지고 있다. '아빠 찬스' '부모 찬스' 없이 공정한 경쟁으로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기는 누가 봐도 어려운 시대다. 이들에게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NO 답이다, NO 답이 정답이다. 답이 없다.' 부모 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비교적 경제적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평가받지만 현실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 힘겹게 답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맞이하고 있어 보인다.  90년대생 개인이 뭘 잘 못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 것이다' 고 생각하는 청년세대에게 물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더 힘들지 않냐?" 90년대생 청년의 답은 이랬다. "쓸데없이 기대하는 것보다는 기대하지 않고 사는 게 낫죠. 생각만 괜찮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더 비효율적이에요. 차라리 기대할 게 없고 기대하지 않는 게 편해요. 사실이잖아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 팩트예요."  이번 생은 이미 망했으니까 자신들에게 '열심히 해라, 치열하게 살아라, 성실이 밥 먹여준다'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더 물어보면서 말 붙이면 말 끊고 더 듣지 않겠다는 말투로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2030 청년세대, 그는 바로 90년대생 94년생 큰 아들이다. 언제부턴지 강아지 부를 때 손바닥을 얼굴 쪽으로 펴고 손끝을 '오라'고 부르는 손짓 대신 손끝을 바깥으로 '가버려'라고 말하는 투로 튕기면서 손사래를 친다.  "그만 말해, 말해 봤자 소용없어요"라고 말하는 아들의 손사래질이 처음엔 상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2030 청년세대, 90년대생 94년생 큰 아들과 97년생 작은 아들 둘을 둔 50대 후반 평범한 엄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업 후  '90년생이 온다' 책을 청와대 전체 직원에게 선물할 때만 해도 이들이 특별함을 지닌 새로운 세대인가 보다 기대가 컸다. 부모가 추앙해온 세대이니 기대해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90년대생 청년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어려운 독립 불능 세대라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됐고 막연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란 기대가 틀릴 수 있다는 불안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큰 아들과 자주 말다툼이 생겼다. 자주 손사래를 치면서 "엄마 세대와 현실이 다르니 더 얘기하지 마세요. 더 말하면 엄마도 꼰대들이랑 똑같아져요" 이렇게 엄마랑 말 섞어주는 자기 같은 아들은 많지 않으니 좋은 관계를 이어가도록 노력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이 책은 이렇게 쓰게 됐다. 부모 또한 최선을 다해 키웠는데 독립 불능 시대를 살고 있는 90년대생 청년 자녀를 '다 키웠습니다만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할 수밖에 없는 부모 고민을 담는다. 매스컴에서는 90년대생 청년 자녀들의 답답한 현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년 자녀들의 구인, 취업, 주거, 임금, 결혼 문제는 곧 부모들의 문제이다. 시대적으로 독립 불능 세대인 청년 자녀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부모들이 떠안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니 세대의 고통은 그 세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 셈이다. 다 키웠지만 함께 살고 있고 독립시키려면 부모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독립 불능 시대에 부모역할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한다. 다 큰, 다 키운 자녀와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할지, '퇴준생'으로 불리며 작장 생활과 퇴직을 번갈아 하는 자녀들을 지원하는 방법이 뭘지, 독립 불능 시대 부모와 자녀의 독립은 어때야 할지. 그때그때 생각나는 사안들을 함께 고민하면서 해법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오래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고 캥거루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대가 없었다. 이렇게 오래 부모와 함께 살며 부모역할을 해야 했던 세대가 없다. 그런 만큼 자료나 책도 없다. 부모로서 고민해나가면서 알게 된 생각들, 이해한 사실들, 마음의 변화 등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미 정답은 없고 답을 찾는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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