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
하루하루의 감정은 날마다 바뀌는 날씨만큼 변덕스럽다. 이번 여름도 그랬다. 그날이 언제였더라? 날짜를 기억하려면 괜히 짜증이 난다. 늘 그렇다. 구체적인 날짜를 기억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하라고 말하지 말아달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확연하게 달라진 감촉을 느끼는 날이 있다. 서서히 기온이 변하는듯 해도 한계단 성큼 내려가는 순간이 있다. 하루 아침에 시원해진다. 시원한 바람을 창을 통해 맞이하는 순간 매번 울컥한다. 무더위를 무사히 견뎠다는 안도감. 그 느낌은 확실히 꼭쥐었던 두손을 스르르 풀게 한다. 이제 피하거나 숨지 않고 이 자리에서 숨 쉴 수 있겠구나. 한여름 가장 큰 괴로움은 밤 12시가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는 열기때문에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잠을 자야 할 때다. 닫힌 공간에 대한 답답함이 있는 나에게 한여름은 에어컨 바람에 갇힌 것처럼 느끼게 한다. 에어컨 바람에 갇혔다는 느낌은 몇 년 전 무더위 쉼터가 생길 정도로 무더웠던 여름 이후 생겼다.
'어! 달라졌어, 정말 달라졌어'. 이 날처럼 날씨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마치 체감온도를 다 함께 느끼도록 몸에 온도계가 장착됐나 싶을 정도로 모두 똑같이 느낀다. 하루 종일 페이스북, SNS에 떨어진 기온에 대한 얘기가 쏟아진다.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른 것 같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지점이 있다. 흰 눈이 펑펑 내릴때 강가 카페를 간적이 있는데 빈 자리 하나없이 사람들로 카페는 문전성시였다. 둘째 아들이 반포 한강공원을 금요일 저녁에 다녀왔는데 어마 어마한 사람들이 한강변에 몰려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한강공원 걸어 들어가는 방공호 같은 입구에 사람들이 마라톤 출발 전 차곡차곡 겹으로 쌓인 사람들 덩어리 같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불금 저녁이었다.
얘기가 길어졌다. 하루아침 달라진 날씨가 왜 '내 인생의 실패감'과 연결되는지 그걸 알고 싶어 꺼낸 날씨 타령이다.'내 인생의 실패감'은 한여름 더위가 홀연히 사라지는 시기, 가을을 알리는 처서 즈음의 드라마틱한 기온 변화가 있을 때와 한겨울을 꽁꽁 싸매고 한껏 웅크리고 살다가 입춘 즈음 반짝 따스함이 피어날 때 바로 그 교차점에서 홀연히 나타난다.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을 흔든다. 3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 무더위와 한겨울 동지 한파를 견디느라 한 눈 팔 겨를 없이 겨우 한 숨 돌리고 있는 계절의 변곡점에서 '내 인생의 실패감'을 만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실패감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온다. 더위를 견디느라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옆구리를 찔렸다. 간신히 더위를 넘겼더니 나에게 네가 얼마나 형편없는 점수로 시험을 치뤘는지 추궁하는 소리같다.
“그냥 살면 안 될까요? 계절이 주는 안도감을 누리고 있는데 잠깐 기다려 줄 수 있나요? 다시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요" 이 요청에 카프카는 말한다. "다른 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유란 간단히 말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는 사람은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자란다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뒤집어쓰고 살았는지는 그 껍질이 부수어졌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 북드라망)
카프카 조언에 의하면 '자신이 무엇을 뒤집어쓰고 살았는지 그 껍질이 부수어졌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라고 했다.
기온이 변하면 더이상 더위를 견디거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무장하고 살 필요가 없어진다. 또다른 내가 되어야 한다. 달라진 기온에 유연하게 변신할 필요가 있다. 실패감은 무엇이든 뒤집이 쓰고 살았던 껍질이 부수어질때 느낌이다. 더는 애쓰고 살았던 무엇, 누구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나로 살 수 없다. 다른 나, 다른 삶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껍질이 깨질 때마다 ‘내 인생은 매번 실패’일수 밖에 없다.
카프카는 '지금 여기를 다른 식으로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새롭게 궁리할 필요가 있으며 어떻게 하면 다르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같은 자리에서 매번 다른 눈을 갖고 세계를 바라보는 진정한 여행, 유목이 되야한다고 주장한다. 카프카는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며 글을 쓰면서 그 안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갇히지 않으려면 계속 깨고 나와야한다고 말한다.
잠시 무더위와 추위에 갇혀있었다. 갇힌 동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할지, 지금 여기를 다른 식으로 보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새롭게 고민하는 성찰을 놓쳤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의 실패감'은 시원한 바람 한줄기 주는 안도감을 환영하면서 다시 자신의 틀에 갇히지 않을 수 있도록 길을 나서라는 응원의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깨고 나와 진정 자유로운 여행을 시작하라는 깨우침이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인생의 실패감'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생각이 든다. 완벽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들의 여행이니까.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 없는 뫼비우스 띠와 닮은꼴이 인생인것 같다. ‘실패감'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설 때까지 계속 이어질지 모른다.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 자신 인생에서 자신만의 행복, 기쁨을 찾을 때까지 계속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계속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껍질을 잘 살피고 깨 나갈 수밖에. 이렇게 쓰고 보니 '내 인생의 실패감'이 응원처럼 느껴진다. 이루던 성취를 한다 하더라도 이루었다는 기대감은 충족되지만 여전히 후회스럽고 아쉬운 점들이 물 밀듯 밀려오니까. '내 인생의 실패감'을 좀 더 사랑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가서 말 걸어주고 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지도. 갇히지 않으려면 똑바로 보고 틀을 발견하고 깨야한다. 무더위를 피하듯 도망가거나 안 보려고 할때 더 큰 실패감으로 가로막아 멈추게 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