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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Aug 30. 2022

살아야 해서 그린 '그림일기'

그림을 그리다


아이들 공동육아 시절 학부모로 만나 알고 지낸 분이다. 학부모로 만났지만 나이 차이가 있는 데다 아이들 학년이 달라 서로 눈인사 나누는 정도 하고 지내는 사이이다. 페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터라 페친을 맺고 근황을 접하게 됐는데 워낙 열정적이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이라 소식을 듣는 것 만으로 늘 자극을 받는다. 한두 차례 암 진단을 받았던 삶의 이력을 알고 있던 터라 늘 건강하길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세 번째 대장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후부터 간간이 투병 중 그린 병실 풍경 그림이 페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때로 병원 화장실 칫솔, 환자복 그림이 올라온다. 어느 날 주사기 그림이 올라올 때는 마음 한편이 서늘했다. 그림과 함께 투병 가운데 떠오르는 단상, 바람이나 마음의 결심을 쓴 '병실 그림일기'를 읽을 때 저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가 그리고 있는 병실 풍경이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고 따뜻한 온기로 전해진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담고 있는 온도일까?

더는 '병실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는 박준성 님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분명 '그림일기'를 그리면서 위로를 받을 테니까. 그림이 주는 다독임과 괜찮을 거라는 격려를 스스로에게 보내고 있으니까.


페북에서 '병실 그림일기'를 감상하면서 나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단순히 감상용, 시간을 보내는 취미용도 아니라 '스스로 치유와 회복'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늙어감에 대한 치유 수단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고, 병들고 늙어갈 노년 시간에 다정하게 말 걸어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줄 벗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병실 그림일기'를 그리는 박준성 님을 보면서 병을 이겨내고 예전의 활기를 되찾겠구나 생각했던 대로 그는 항암치료를 이겨내고 몇 차례 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후 어반 스케치, 그림일기 그리기를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나누고 있다. 세 번째 대장암에서 그를 구한 건 '병실 그림일기'였다고 믿는다. 그림이 항암 치유 수단이 되어 건강을 되찾도록 도운 거다. 멋지고 아름답지 않은가?



박준성 님 페이스북 글 2019.04.15

예전 목공예는 간암의 혜택이고,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은 2019년 대장암이 준 선물이다. 페이스북에서 옛 자료를 찾다 보니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쓴 이 그림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2019년 2월부터 항암 치유의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다. 3년이 다돼간다. 참 많이 그리긴 했다. 나야 살려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하고 주문을 외우면서, 하고 싶었으나 못 했던 것을 하게 됐지만, 암이라도 걸려서 그러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금 여기서 그냥 시작해도 빠르지 않다.




그 후로 몇 년이 훌쩍 지났다. 곧바로 코로나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더니 문 닫고 입 닫고 귀 닫고 눈 닫고 2년이 훌쩍 지났다. 모든 활동이 멈춰졌다. 모두 숨죽였다. 숨 쉬는 일조차 편안하지 않았던 시간, 2년이 훌쩍 지난가을, 2021년 드디어 참여연대 '서울 풍경 스케치'라는 강좌를 통해 그림을 만나게 됐다. 박준성 님은 대장암 완치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그렸던 그림일기를 날마다 365일 그리는 그림일기로 이어가면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 어디를 가든 풍경스케치 그릴 시간을 쪼개 스케치를 하고 돌아와서 곧장 채색을 해서 페북에 올린다. 이제 그림 실력이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성장했으며 '작은 책'에 쿠바 여행 가서 그린 여행 스케치를 연재하고 있을 정도 실력이 됐다.


이젠 나의 그림 그리기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박준성 님에게 그림이 항암 치유 수단이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림 그리기가 준 선물이 있다. 그걸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 글을 쓴다. 나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인지? 그림을 그리면서 차근차근 찾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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