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외출이 꽁꽁 묶인 어느 날이었다. 윗집 새로 온 젊은 아빠가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왔다. 4살 남자아이와 6살 여자아이, 남매가 몸을 뒤로 빼고 눈치를 보고 서 있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시끄럽게 뛰어다녀서 죄송합니다 해야지"하니까 엉덩이를 뒤로 쭈욱 빼고 인사를 한다. 개미만 한 소리로 "죄송합니다." 아빠가 시켜서 하는 인사지만 인사를 받고 나니 층간소음을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사라진다. '저렇게 쪼끄마한 아이들이니 잠시도 한 자리에 있지 않고 뛰어다니는 게 당연하지'. 아이 아빠는 그렇게 한두 번 더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와 시골에서 온 농작물이라며 고구마, 피자두를 나누어주었다.
워낙 무신경한 스타일이라 세상 소음에 무감각한 편이기도 하고 크게 들렸다 하더라도 아이들 소음이려니 넘겼을 텐데 막상 젊은 아빠의 인사를 받고 보니 위층 쿵쾅 거리는 소리가 꽤 크게 들린다. 조용히 소파에서 한 숨 돌리려고 누워 있을 때 재바른 발걸음으로 총총총, 통통통 쉴 새 없이 뛰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속으로 '미리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문 두드리고 올라갔겠구나' 싶다. 아이들 뛰는 소리는 코르나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멈추었다. 하루 종일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거짓말처럼 조용해졌고 아이들 앞세워 문 두드릴 일이 없어졌다. 아이들은 집에서 노는 동안 즐거웠을까? 궁금하다.
나의 첫 컨투어 드로잉 작품은 윗 집에서 현관에 두고 간 파리바게뜨 종이백이다. 파리바게뜨 빵 종이백에는 알이 굵은 알밤이 제법 많이 담겨있었고, 하트 포스트잇이 단정하게 붙어있었다. "윗집입니다. 시골에서 가져온 거라 조금 나눕니다". 외출하려고 문을 열었더니 현관 오른쪽 한편에 얌전히 놓여있다. 윗집에서 보냈구나 짐작이 됐다. 선물은 받으면 기분이 좋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자주 전해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는데 곧 잊어버린다. 윗집에서 놓고 간 파리바게뜨 종이백에 붙은 하트 포스트잇이 예뻐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정감 있고 따뜻하게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순간의 느낌과 정감을 표현하기에는 사진보다 그림이 훨씬 훌륭한 수단이다. 손 그림, 손으로 쓴 편지, 집밥, 손 바느질. 대체할 수 없는 기억과 추억이 담겨있다.
그렇게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먹자 그림은 순삭 그려졌다. 마음을 담아 그렸더니 수월하게, 쉽게 마음에 들게 그릴 수 있었다. "와! 이게 그려지네. 그냥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되네. 드로잉을 이렇게 쉽단 말이야? 어메이징, 똥 손은 아니었네" 드로잉에 재미를 붙인 순간이다. 지금도 이 그림을 보면 따뜻하다. 편안하고 행복하다.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을 때 의미 있는 사물과 눈 맞춤하며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 자체가 그릴 때이다.
윗집에서 놓고 간 선물이 따뜻해서 그린 그림
처음에는 어떻게 그릴까 망설였는데 보이는 대로 따라 그렸더니 제법 느낌이 난다.
컨투어 드로잉은 사물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리는 그림이다. 펜을 떼지 않고 이어 그리는 연습.
컨투어 드로잉은 일명 사물 윤곽선 그림이라 불린다. 사물에서 눈을 떼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연습이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 선을 주욱 이어서 그리지 못한다. 잘 못 그릴 두려움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리다 보니 선이 가늘게 끊어진다. 컨투어 드로잉은 잘 못 그릴 두려움을 잊게 한다. 직관적으로 사물을 형태를 보고 따라 그린다. 위에 그린 종이백은 컨투어 드로잉은 아니다. 컨투어 드로잉은 선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서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의미하는데 잘못 그려도 멋스럽다. 처음에는 만년필, 포도주 오프닝, 스카치테잎, 향수병 같은 사물 그리기 연습부터 시작해 자동차, 오토바이, 자연 풍경으로 그림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기 좋다. 그림을 그리면서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는 습관은 축복의 선물이다. 자세히 보면 보이는 대로 쉽게 그릴 수 있다. 삐뚤빼뚤해도 오히려 재미있다. 재미를 붙이면 삶이 즐거워진다. 무료하고 지루하던 삶에 색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기가 놀이가 된다면 어린아이처럼 그리면서 놀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