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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Sep 06. 2022

드디어 놀이를 찾다

그림을 그리다


'이 저녁 시간 동안, 내가 마을 위 산자락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이 찬란하고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관객이나 관찰자가 아니다. 나는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고 판단하지도 않으며 그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뭔가 갈망하는 어린아이처럼 내 행위에 몰두하고 내 놀이를 사랑하는 것뿐이다. (화가 헤세, 이레 출판사)'

위대한 작가 헤르만 헤세는 마흔의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을 통해 기쁨과 여유, 만족을 느꼈으며  해방과 치유, 삶을 견디게 하는 위안을 얻고 의미를 잃어가는 문학창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와 턱도 없는 비교지만 나도 그림 그리는 취미를 통해 순수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인생에  번도 생각하지 못한 '그림 그리기' 통해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찾기를 갈망했던 놀이와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시간 도서목록에 있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크놀푸' 작가 헤르만 헤세와 내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매달 숙제로 제출할 독후감을 쓰기 위한  읽기였던 까닭에 작품은 알지만 헤르만 헤세는 몰랐다.

서울 풍경스케치' 등록하고 그림에 관심이 생길 무렵 정여울 작가가   '헤세_바로 지금,  자신으로 살기 위해' 읽으면서 위대한 작가이면서 화가인 헤세가 얼마나 그림 그리기를 사랑했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위대한 문학작가가 그림 그리기를 통해 느낀 찬미는  혼자만 느끼는 기쁨이 아니었다. 헤르만 헤세가 느낀 그림 그리기의 기쁨을 함께 느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다. 어쩜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세상에 헤세가 느낀 기쁨을 똑같이 느끼다니 내가 위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과장하냐고 핀잔을 줘도 괜찮다. 순전히 나만 알수 있고 나만 느끼는 기쁨이니까. 그림을 그리면서 헤세가 느낀 기쁨과 만족, 해방감과 치유, 위안,  쓰기를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위로를 충분히 받고 있으니까.





지금은 벌써 옛일이 됐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일상생활이 모두 멈추었던 시간이. 코로나 거리두기 2년이 지나던 가을 답답함을 해소할 탈출구를 찾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문을 두드린 곳이 '서울 풍경스케치' 강좌였다.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반나절 투어, 혼자 다니기 멋쩍어 사람들과 콧바람 쐬러 나가고 싶다는 간절함을 갖고 신청한 강좌였다. 놀 목적이 먼저였다. 참여 동기를 나눌 때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여행 풍경을 스케치하고 싶어 왔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른 것 같아도 사람 살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 풍경스케치'는 답답한 일상에 숨구멍을 틔워줄 탈출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모여 그림 그릴 곳을 둘러보고 각자 풍경스케치를 1 시간하고 모여 품평을 나누고 12시에 헤어지는 일정이다. 서울에 살면서 가보지 않았던 세운상가, 정동거리, 복정 마을, 이화마을 같은 곳들을 둘러본 후 그림을 그렸다.


첫날은 서촌 골목길을 둘러본  그림을 그렸는데 아직  장면이 떠오른다. 그림 그리려고 찜해둔  옆이 계란집이었다. 70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자전거에 계란을 싣고 배달을 다녀오던 중이었다. 나를 발견하고 의자를 건네면서 "여기  그릴  있냐" 앉아서 그리라고 의자를 슬쩍 내어준다. 첫날 스케치라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았고 계속 그릴 장소를   잡았다는 후회가 들었다. 시간은 1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는데 완성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는데 동네 할머니  분이 지나가다가 계란을 사러 왔다. 동네 주민인  분은 아주 오래전에 알던 사이처럼 보였다. 오세훈이 서울시장이 되면서 서촌 오래된 한옥 재개발 동의서를 주민들에게 받는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골목 한구석에 앉아 서촌 주민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행  기분이 들었다. 1시간을 골목 구석에 앉아있자 비로소 서촌 사람들 일상이 보인다. 잠시  내가 앉아 있던   대문이 철컹 열리더니  20 남자가 외출한다.  10  어머니인  보이는 아주머니가 집으로 들어가면서 휠긋 나를 보고 들어간다. 굳게 닫혀 아무도   같지 않던 좁은 골목 오래된 기와집 앞에 1시간 머물렀기에 가능한 일상과의 만남이었다.   서촌 풍경스케치는 서촌 원주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천천히, 자세히 보고 그려야 하는 그림 덕분에 잠시였지만 서촌 골목 사람들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든다.






사진을 찍을 때와 달리 그림을 그리려  때는 훨씬 느린 걸음으로 자세히 보면서 걷게 된다. 멈춰서  참을 보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여행자의 걸음' 이럴 거라 생각된다. 다시 어느 도시로 여행을 간다면 그림을 그리듯 천천히 걸으며 자세히 보고 상상하고 냄새 맡고 색을 칠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서울 풍경스케치수업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운게 아니다. 풍경을 어떻게 감상할지, 천천히 관찰하면서 걷기, 낯선 곳을 새롭게 보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그림을 그릴 생각을 갖고 걸으  여행자의 선이 된다. 지루하고 똑같은  풍경이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혼자서도 너무 재미있게 다닐수 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감을 멀리 가지 않아도 누릴수 있다는 건 분명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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