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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Nov 04. 2020

매주 일요일 저녁, 나는 손톱을 깎는다

정해진 시간에 손톱을 깎는 이유는?

신문을 넓게 펼친 뒤 거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딱, 딱, 딱'


깎여나간 손톱 끄트머리가 사방으로 튄다. 아랑곳하지 않은 두 눈과 손은 삐죽 나온 입과 함께 다음 손톱으로 향한다. 어떤 일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 앞으로 나온다. 열 손가락을 정갈하게 마무리한 뒤 흩어진 손톱 잔해를 한데 모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떨어지는 손톱을 보며 한 주 동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은근슬쩍 건네본다.




손톱 다듬기는 군대에 있을 때 시작됐다. 자주포 조종수인 포병으로 군복무를 했던 당시 내 손톱에는 항상 기름때가 껴 있었다. 연일 이어지는 자주포 정비로 인해 손은 텄고 손톱은 항상 까맸다. 비누로 몇 번을 씻어야만 본연의 색상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이면 다시 까만색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이 반복됐다.


까만 손톱을 본 가족과 친지들은 “군생활이 힘든가 보구나. 연고랑 크림 잘 바르고 잘 관리했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운 탄식을 전했다. 나에게 까만 손 끝과 손톱은 힘든 군생활을 대변해주는 훈장과도 같았다.  

 

반면 친구들은 “아우, 지저분해라. 좀 씻고 다녀라”며 가감 없는 지탄을 보냈다. 문득 손톱을 보니 하루 종일 모래 장난한 유치원생의 손톱 같았다. 부끄러운 마음에 잽싸게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자랑스러운 훈장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내렸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손톱 전체와는 색이 다른 부분이 고개를 들면 컴퓨터 자판을 치는 데 굉장히 거슬린다. 손끝과 자판이 맞닿으며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하는데 손톱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면 께름칙한 기분이 든다.


자료 작성이 더디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컴퓨터 화면에 빼곡히 쓰여있지 않으면 긴 손톱을 범인으로 몰아세우곤 한다.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칠 때도 경기에서 지면 미처 깎지 못한 애꿎은 손톱만 바라본다. 이기더라도 손톱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마냥 기뻐할 뿐이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손톱 때문이라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일까? 손톱은 주인으로부터 죄인 취급을 당한다. 항상 용의자 신분으로 살아가다 조금씩 깎여나간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손톱의 누명을 풀어주고 싶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잡티를 짜주고 못난 털을 뽑아주고 귤 까기의 일등공신인 손톱의 선행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손톱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기 위해 일정한 날 손톱을 깎기로 했다. 한 주를 마감하고 다음 한 주를 기다리는 일요일이 바로 그 날이다. 손톱을 핑계로 불편한 현실을 피하는 행동은 버리기도 했다.


사람의 손톱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왔는지 엿볼 수 있다. 평생을 목수로 살아오신 아버지는 오른쪽 엄지손가락 한 마디가 없다.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나이에 합판을 재단하다 톱니에 잘려나갔다. 잘린 면이 고르지 못해 접합 수술이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동생과 나를 응원할 때 항상 왼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오른쪽 엄지 손가락은 한 마디가 짧아 응원이 반밖에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딱, 딱, 딱'


어느 날 손톱 깎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뭐하세요?” 여쭸더니,

“손톱 깎는다”라고 하셨다.


무심결에 아버지의 손톱을 봤는데, 한 마디가 없는 엄지 손가락의 손톱도 깎고 계셨다. 길지는 않지만 손톱이 살을 뚫고 올라와 있었다. 한 마디가 없는 손가락에서도 손톱이 자란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버지의 짧은 손톱에서 세월의 인고가 묻어 나왔다. 그 손톱에는 자식들 걱정, 가족에 대한 사랑, 가장의 책임이 손톱 뿌리보다 더욱 깊게 박혀있다.




어느덧 일요일이다. 어김없이 손톱깎이를 꺼내 손톱을 깎는다. 손톱을 깎으면서 한 주의 고단함을 가차 없이 날려버린다.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기 위한 나만의 자세인 동시에 일주일을 무사히 버티기 위한 충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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