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할아버지

by 도토밤

한번 훌쩍 떠나시면 몇 달을 지리산에서 머물다가 돌아오시곤 하던 분. 모 산악지에 '산할아버지'라는 별칭으로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던 분. 예전부터 기록하고 싶었던 나의 친할아버지 이야기이다.







어렴풋하게 남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할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언성 한 번 높이시는 걸 본 적 없는, 하회탈의 주름진 반달눈으로 허허 웃으시던 모습. 인자하고 수더분하며 말수가 매우 적으신 조용한 분이었다.


육이오 당시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할아버지는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몸이 잔뜩 상해 돌아오셨다. 할아버지의 부재중에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난 아빠와 작은아빠는 먹은 게 없어 젖도 잘 돌지 않는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들이었다고 한다. 생쌀을 입으로 씹어 으깬 다음 그것을 갓난 손주들 입에 넣어 주셨다는 나의 증조할머니. 어떻게 해서든 아기들을 살려내려 하신 눈물겨운 내리사랑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리하여 다섯 자녀들을 비롯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인 가장 역할은 친할머니의 몫으로 넘어갔고 할머니는 독하게 이런저런 일을 하며 버티고 살아내셔야 했다. 몸을 쓰는 노동직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은 할아버지는 가장으로 돈을 벌 수 없게 된 처지에 아마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만큼 스스로에 대한 상실감과 위축감을 크게 느끼셨으리라 짐작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산으로 시선을 돌리셨던 듯하다. 산이 좋으셔서도 분명했겠지만 어쩌면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는 집이라는 공간이 못내 불편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다정하신 분이었다. 나를 보러 오실 때는 항상 주전부리나 인형을 들고 찾아오셨다고 했다. 전부 기억나지는 않으나 할아버지는 손녀인 나를 예뻐해 주셨고 귀히 아껴 주셨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마음에 그대로 투과되어 따뜻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진심은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






원래 하려던 산할아버지 이야기로 돌아와, 그렇게 할아버지는 산 사진을 찍으며 지내셨다. 어마어마한 양의 필름을 인화해서 나온 할아버지의 인생 걸작들. 그저 비전문가로 독학하여 찍으신 산, 자연, 인생. 가족들 사이에서는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아담하게라도 사진 전시전을 열어 드리면 어떻겠냐는 대화들이 오갔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 같아서는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개인 전시전을 열지만 당시에는 절차들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이루지 못한 소망을 안고 가셨다.


숱하게 산을 오르내리시면서 어떤 것을 경험하고 느끼셨을까. 무거운 사진장비를 이고 산을 오르실 때마다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셨을까. 답은 찾으셨을까. 이십 대에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사십 대 중반이 된 지금 할아버지께 여쭙고 싶은 것들이 많다. 저도 산에 오르고 싶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들이 등산을 그렇게 다닌 것처럼요. 산에 오르면 진정 해방될까요?





그리운 할아버지, 산할아버지 이야기 마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