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렵다, 나
벚꽃이 한창이던 봄날. 오후 네 시의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던 날. 그동안 기회가 닿지 않았던 예술문화 NGO 길스토리 공동관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던 날. 본부장님과 이성수 작가님을 비롯한 프로보노님들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들을 다정다감하게 살펴 주셨고 아늑하고 편안한 작업 분위기 조성을 위해 애써 주셨다. 이 소박한 틈을 빌려 덕분이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림 실력에 기반한 자화상을 그리는 게 아니니 어렵지 않으리라, 드문드문이라도 자아성찰의 우물을 들여다보곤 했으니 나를 표현하기에 수월하리라 믿고 가벼운 걸음으로 향했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그림 기법으로 완성하는 자화상은 어떨지 기대되었다. 그림에 나의 무엇을 담아낼지 설핏 가닥도 잡아 보았다. 그래, 기저에 자리한 통곡의 대나무숲을 그려 보자고 대나무숲 이미지를 검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설픈 설계는 실전에 무용했으며 되려 예상 범주에 전혀 없던 나와 맞닥뜨린 통에 지독하고 되직하게 가라앉아만 갔다. 미리 말하지만 프로그램 참여자들 중 홀로 이상한 방향으로 자화상 그리기에 과몰입한 입장에서 기록하는 경험담이라 공감도는 0에 수렴할 가능성이 높겠다.
몹쓸 기억력 탓에 작가님 말씀을 정확히 옮기지는 못하지만 문맥을 훑자면 종이 한 장쯤 망치는 건 괜찮지 않냐고, 자유롭게 망쳐 보라고 하셨다.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고작 종이 한 장 망치는 작업이, 물감을 묻힌 붓으로 도화지 위를 거침없이 활보하는 작업이 내게 이토록 난감한 일인 줄 말이다.
망친다는 단어에 편협하게 갇힌 자는 '망치자'라는 세 글자를 종이 귀퉁이에 흘려 썼다. 이를 기점으로 도화지를 나 자신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창하지는 않아도 차근히 쌓아온 삶의 기록들이 부정되는 망침을 생각했다. 망쳐진 나로 인해 망가질 존재들에 대해서까지 생각했다. 그리하여 고작 종이 한 장 망치는 일이 나를 망치는 일인 것만 같아 더럭 겁이 났다. 슬픔이 지나쳐 아프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붓을 쥐고 망설이던 순간부터 붓놀림은 온전한 자의가 아니었다. 자유분방함을 가장한 채 다분히 의도적으로 붓을 상하좌우로 밀어 보거나 물감을 털어 댔다. 색이 섞여 칙칙해져 가는 게 불편했으면서도 괜찮은 척 물감을 겹쳐 올렸다. 나를 풀어내고자 한 행위들이 스스로를 속박했다. 자유를 누리는 일도 결국 의식의 통제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거였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대단한 착각 속에 빠져 살다가 처절하게 자각해 버렸다. 실은 누구보다 정형화된 틀에 박혀 지속된 안정을 바라는 인간. 변화에 방어적이고 수동적이며 도화지 하나 어쩌지 못하는 용기 없고 나약한 인간. 그게 나였다.
절반의 억지스러움으로 휘갈긴 붓놀림 속에 자화상이라 부를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야 했다. 찾았다. 못나서 외면하고 싶은 옆모습이 연상될 만한 선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매부리코에 안면비대칭이 심한 얼굴 외형. 특히나 오른쪽 턱선은 굴곡진 코와 합쳐져 유난히 뒤틀려 보인다. 영 정이 가지 않는 옆모습이 눈에 띄다니. 이건 무슨 얄궂은 우연인가 싶은 마음으로 옆얼굴 선을 진하게 덧칠했다. 이대로만 두면 허전하겠지. 이어 감은 눈을 그리고 머리칼을 날려 보았다. 슬퍼 보였던 건 슬퍼서였을까, 슬프고 싶었던 까닭일까. 대나무숲은 끝내 그리지 못했다.
앞서 무거운 말만 늘어놓았으나 공동관심 프로그램 자체는 가까운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유의미하고 깊이 있게 진행된다. 오로지 자신에게 가닿아 집중하며 내면을 살피는 귀중한 체험을 어디서 해 볼 수 있겠는가.
현장에서 이루어진 참여자 이야기 나눔 때는 아무래도 정리되지 않은 말을 꺼내려니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들이 분절되어 오해의 소지가 있었을 텐데 이것만큼은 확실히 바로잡고 싶다. 소감 중 매우 힘겨운 작업이었다고 말한 건 내 안에 있는 온갖 것들을 건드리느라 버거워서 오는 힘듦이었다는 것. 그만큼 아주 오래 기억하게 될 시간이었다. 참여자 분들의 대다수는 작업하는 동안 즐겁고 자유로웠으며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도 느꼈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셨다.
후에 이 자화상을 본 한 지인의 감상을 짧게 남겨 본다. 나무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말의 힘인 거지.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보니 자화상은 그대로 나무가 되었다. 대나무라고 할 만한 형상은 그리지 않았지만 나무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