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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알쫑알 대는 사람 May 17. 2023

화장실에서 만난 그녀

가장 사적이고 가장 은밀한 공간인 화장실은 무조건 방음 설비가 필요하다는 평소 주장을 마음속에 크게 외치며,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 중이다. 분 초를 다투는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고 난 후, 잠시 마음의 평안을 찾는 일종의 의식이다.


때마침 이용하는 사람도 없어 10분은 족히 조용히 있을 수 있겠다 싶은 찰나, 어디 선가 들려오는 ‘와장창’ 소리와 뒤를 잇는 ‘억’ 소리. 등장부터 심히 요란하다. 이건 필시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구고 좌절하는 소리다. 상황이 정리되면 좀 잠잠해지겠지 하며 다시 잠시 눈을 감아보는데 이어지는 노랫말. 오잉?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도 아니고 노랫말? 흥얼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정확한 발음에 또렷한 음정으로 우렁차게 부르는 거다. 노래를!


“아이 캔 테이크 ~!!”

 

최근 즐겨 듣고 있는 요즘 말로 힙한 노래라 가사가 귓가에 꽂힌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분명 다른 칸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멈추지 않는 노래에 시간이 갈수록 힘이 실린다. 목청도 좋다. 칸막이 하나 사이에 두고 울려 퍼지는 우렁찬 노랫소리에 내 마음도 흔들, 내적 흥이 샘솟는다. 흥이 샘솟는 것은 비단 나뿐은 아닌지, ‘쿵쿵’ 문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더해진다.


마주치면 민망해할까 싶어 눈치껏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 서둘러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다.


“끼익 …”


소리에 몸이 자동반사 해버렸다. 세면대 거울에 하릴없이 서로를 향한 두 개의 시선이 뒤엉킨다. 이쪽은 아차 싶건만, 저 쪽은 오히려 흔들림이 없다. 태연하게 문을 밀고 나와 당장이라도 춤사위를 한 판 벌릴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서 화장실 문을 나서는 그녀다. 로또 라도 맞았나.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도 합격한 건가. 신난 목소리에 가벼운 몸놀림까지 덩달아 나까지 가볍다. 노래를 같이 부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그러고 보니 저분은 그분이다. 2주 전인가 바로 이곳에서 찜통더위에도 검은색 두꺼운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몸까지 ‘들썩들썩' 하며 하며 ‘엉엉’ 울고 계셨던 분. 대체로 몸을 크게 움직이며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분인가 보다. 저분은. 진짜 너무 서글프게 울어서 화장실은 급한데 피해서 나가줘야 하나 아니면 못 본 척해주는 게 나을지를 고민했던 당황스러운 기억. 일이 뜻대로 안 되는지 꽤 길게 울고 있었다. 확실히 우는 것보다는 차오른 흥을 못 이겨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게 확실히 낫긴 하다.


화장실만큼 세상 가장 다채로운 소리와 상황이 가득한 곳이 어디 있나. 매일 매 순간 가장 솔직한 감정을 마주하는 이곳에서 마주한 그분의 뜻밖의 노랫소리와 사뿐한 춤사위 덕분에 내적 흥이 차오른다. 다음에 또 한 번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떼 창이라도 할 것.


누군가 그랬다. 인간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옮는다고. 오늘의 흥을 나눠 주신 그분께 무한한 감사를 전하며, 사람이 가장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공간인 화장실에서 내일 또다시 웃으며 마주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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