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쫑알쫑알 대는 사람 Jun 07. 2023

프로 이직러는 웁니다

입이 있어도 말 못 하는 프로 이직러의 사연

출근하신 아빠가 별안간 전화를 하셨 단다. 꽤나 엉뚱한 시간에 전화선을 타고 날아온 질문들. '요즘 우리 딸이 좀 달라진 건 없냐?' 혹은 '풀이 좀 죽은 것 같지 않냐?'는 등. 요리보고 저리 봐도 ‘까르르’ ‘깔깔’ 잘 먹고 잘 노는 애는 갑자기 왜 찾냐 물으니, 이어지는 대사.


“놀라지 말고 들어.”


이 정도면 그냥 미리 놀라라고 주는 신호 아닌가. 회사를 또 그만둔 것 같다고. '날도 더운데 매일 출근하는 척 이른 시간에 나가 어디서 밥도 못 먹고 헤매다 집에 들어오는 것 같다' 걱정을 하셨 단다.


아뿔싸.


공백기 없는 환승 이직인 터라 신경도 안 썼던 공문서가 왜 인지 아빠 앞으로 친절히 배달됐단다. 절대 모르는 척하고 잘해주라는 신신당부도 잊지 않으셨 단다. 수화기 너머로 아마 눈도 여러 번 ‘찡긋’ 하셨겠지.


평소와는 비교도 안되게 화려한 저녁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엄마는 말씀하신다.


"더운데 밖에 나가서 시간 보내지 말고, 집에 있어!"


'도대체 몇 번 째냐' 혀를 끌끌 차는 소리도 따라 붙는다. 잔소리가 귀찮아서 완벽 범죄를 꿈꿨던 프로 이직러의 마음에 된서리가 내린다.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하 자니 두통은 ‘지끈지끈’하고, 내일 출근은 해야겠고. 하고 싶은 일을 좇아 이직을 하고도 이직했다 말하지 못하고.


홍길동이 따로 없다.


그렇게, 프로 이직러는 웁니다.


작가의 이전글 작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