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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알이 Jul 03. 2024

한없이 꼼꼼한 선배도 나처럼 덤벙거리셨었다니

혼나는 게 두렵지만 기대되는 이유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시는 조연출 선배가 계신다. 1주일 동안 그 선배한테 인수인계를 받으며 그 선배와 함께 일하고, 1주일 뒤 그 선배는 퇴사를 하신다고 한다. 나는 옆에서 선배가 일하는 걸 보면서 진짜 꼼꼼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자료도 한 번 받으면 세네 번은 다시 확인해 보시고 굳이 필요한 게 아니더라도 필요해질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해 놓으신다. 반점이나 따옴표 등 그냥 넘어가기 쉬운 부분도 놓치지 않고 빠진 게 있으면 다시 기술팀에 전화를 드려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신다. 정말 똑 부러지게 자기 할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다른 사람의 할 일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신다.


내 물건도 제대로 못 챙기고 덤벙거리는 나는 그 선배한테 ‘선배는 진짜 꼼꼼하신 것 같아요. 저는 워낙 덤벙거려서 선배 나가시면 제가 혼자 선배가 하시는 일을 다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 선배는 ‘원래 저도 입사할 때는 엄청 덤벙거렸는데 PD 님들한테 많이 혼나다 보니 이렇게 몇 번이고 확인하게 된 거예요.’라고 하시며 PD선배들한테 혼났던 이야기를 여러 개 들려주셨다.


기술팀에서 잘못한 일이었는데 본인이 혼난 적도 있으셨다고 했고, 선배의 허락을 맡고 넘긴 자료였는데 왜 그 자료를 넘겼냐며 혼난 적도 있으셨다고 했다. 이럴 때는 내 잘못이 아닌데 혼나는 기분에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방송업계는 시청자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몇 번이고 확인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 신입인 나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게 대해 주시는 선배들이 그렇게 무섭게 혼내신다는 게 안 믿기면서도 원래 착한 사람이 화내면 훨씬 무섭듯이 나도 선배들한테 혼나면 내 잘못이더라도 멘털이 날아가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벌써 두려웠다. 그리고 그렇게 혼나는 건 두렵지만 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덤벙거림을 이 일 하면서 고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대도 되었다.


다행히 조연출 선배는 다른 방송국에서 일할 때보다 우리 팀은 선배들도 훨씬 너그러우시고 소위 말하는 꼰대가 없으셔서 첫 사회생활에 적응하기는 비교적 쉬울 거라고, 내가 처음인 거 선배들 다 아시니까 실수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혼내실 분은 없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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