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식당과 주차장에서 배운 작은 공동체 의식
최근 회사 사내 익명 게시판에 논란이 된 글이 하나 있었다.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자리 맡기에 대한 글이었다.
나는 재택근무보다 출근을 선호한다. 근무 효율이 더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한 달 근무일의 절반 이상은 출근을 권장하는 방침이 생겼다. 그래서 월요일이나 화요일 같은 주초에는 식당이 꽤 붐빈다. 자연스레, 삼삼오오 동료들과 모여 자리를 잡는 일도 경쟁이 되었다.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요지는 단순했다.
“사람 없이 물건만 덩그러니 올려놓고 자리 맡기는 건, 경우 없는 행동 아닌가요?” 글에는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어떤 이는 카페에서 핸드폰으로 자리 맡듯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했고, 다른 이는 “카페는 혼자 온 경우에만 그런 암묵적 동의가 있을 뿐”이라며 반박했다. 결국 좌석 선점에는 물건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는 협력업체 직원들도 출입한다. 그들은 우리 회사 사내 익명 게시판에 접근할 권한이 없으니, 아마 이런 논란이 있었는지도,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게시판 댓글 중에는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분들은 이 글을 볼 수 없을 테니까요.” 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보였다.
사실 논란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설령 안다고 해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꼭 남의 회사 사람일 거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사람이 모이면 결국 그 집단은 평균값을 찾아가기 마련이니까.
나 역시 요즘 점심시간마다 자리 잡기에 고생한 적이 많다. 사람들 식판을 힐끔거리며, 마치 스타크래프트 SCV가 미네랄을 캐고 커맨드 센터를 찾듯 자리에서 누군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그마저도 눈치 준다고 하면 논란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래도 물건만 덩그러니 올려둔 채로 줄을 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좌석은 사람이 선점하는 것이지, 물건이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 생각을 유튜브 알고리즘이 읽었을까. 요즘은 숏츠에서 ‘사람이 주차장을 선점하는’ 장면이 자주 뜬다. 차가 아닌 사람이 먼저 서서 다른 차량을 막는 영상들. 주차장은 차량이 머무는 곳이지, 사람이 자리 차지할 곳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이것도 ‘이기주의의 팽배’다. 세상에는 자기 편의만 먼저 챙기는 사람이 참 많다.
오늘 점심도 구내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휴가 기간이 끝나고 복귀한 인원이 많았던 데다, 지하 2층 중앙부 식당에는 특식까지 나왔다.
동료 아홉 명과 식판을 들고 좌석을 찾던 중, 여섯 자리가 비어 있는 테이블을 발견했다. 그런데 가운데 테이블에 추리닝 상의 하나가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나는 순간 탄식이 나왔다.
물건에 의한 자리 선점을 당한 것이다.
30초쯤 눈치를 보던 나는 그냥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 추리닝을 내 옆자리로 치웠다.
“프로님, 그냥 앉죠. 이분 오시면 제가 말씀드릴게요.우리 잘못한 거 없잖아요." 동료는 살짝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곧 문제의 주인공이 식판을 들고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물건만 올려져 있어서…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앉았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추리닝을 건넸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이었고, 사원증 목줄의 로고를 본 순간,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 사내 게시판에 이러한 논란에 대한 글을 올려도 이런 사람들은 모를 테지.’ 약간 씁쓸했지만 식사를 시작했다. 동료들은 나에게 엄지척을 보냈다.
“나였으면 부딪치기 싫어서 그냥 돌아섰을 거예요.” 솔직히 속으로 뿌듯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오면, 꼭 한 번은 말해 보리라 다짐했었으니까.
아마 그분은 다음부터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본인 회사에 가서 억울하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절대적으로 옹호하긴 어려울 테니까.
이런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해야 조금이라도 이기적인 행동이 줄어들지 않을까.
오늘 하루를 곱씹어 보아도, 적어도 내가 잘못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구내식당의 한 자리, 주차장의 한 칸을 선점하는 데에도 결국 암묵적인 규칙이 필요하다. 그 규칙의 저변에는,
모두의 의식 속에 내재된 상식과 공동체 의식이 깔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