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빛 물병의 기억

어린 시절의 갈증에서 부모님을 향한 마음까지

by 빛담

"어, 형 정수기 설치는 잘 되었어?"

"아니, 잘 안 됐어. 설치기사가 우리 집은 수압이 낮아서 설치를 못 한대."

작은 평수 아파트에서 살다가 큰 평수로 옮기며 몇몇 가전제품을 새로 들였는데, 우리 가족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건 다름 아닌 냉온 정수기였다.


이사오기 전 살던 집은 25평 복도식 아파트였다.

실제 공간들이 너무 협소했는데, 특히 주방은 더 심각했다. ‘ㄱ’자 형태라지만 그마저도 변형된 구조가 아니어서, 설거지 공간과 가스레인지 자리를 제외하면 음식을 둘 곳 조차 마땅치 않아 조리 자체가 어려웠다. 그런 주방에 정수기를 설치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사 후에는 주방이 아주 넓지는 않아도 빌트인 정수기 하나 들일 공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리하여 빌트인 정수기를 설치하고 나니 삶의 만족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냉수든 온수든 정수든, 냉장고나 전기포트 없이 원하는 만큼 바로 마실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이처럼 신문물을 접하고 나니, 부모님 댁에도 꼭 들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서두에 언급한 것 처럼, 부모님 댁에 방문한 설치기사는 집 수압이 너무 낮아 설치가 불가하다고 했다. 결국 부모님은 여전히 결명자를 끓인물을 드셔야만 하게 되었다.


사실 그 집, 지금은 ‘부모님의 집’이 되어버린 곳에서 나는 늘 결핍을 느끼며 자랐다.

우선 내 방이 없었다. 다섯 살 많은 형과 한 방을 쓰다 보니, 형이 사춘기가 먼저 시작되자 자연스레 그곳은 ‘형의 공간’이 되었고, 나는 공간을 잃은채 거실을 전전해야 했다. 그때 마음 깊숙이 ‘피해의식’ 같은 게 자리 잡곤 했다.

"왜 나는 형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았을까?"
"왜 우리 집은 방 하나 못 줄 만큼 가난할까?"


그러한 공간에 대한 피해 의식보다도, 그 시절 더 내가 싫었던 건 사실 ‘물’이었다. 맞벌이를 하시던 어머니는 늘 삐뚤빼뚤한 글씨로 메모를 남기셨다.

‘아들, 도시락 챙기고, 냉동실에 얼음물 넣어뒀으니까 가져가.’

나는 또다시 결명자라는 생각에 한숨을 쉬며, 보온도시락과 함께 노랗게 얼어 있는 500ml 페트병을 들고 학교로 향하곤 했다. 녹은 물 속에는 늘 결명자 찌꺼기가 둔탁하게 떠다녔다. 목을 축이려다 오히려 목에 걸리기 일쑤였다. 차라리 운동장 수돗물이 더 나았다.


한번은 친구에게 물을 건넸는데, 그는 색깔을 보고 보리차라 여겼는지 한 모금 마시곤 곧 얼굴이 굳어졌다. ‘고맙다’라는 말만 남기고 페트병을 돌려주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나는 그가 거의 마시지않고 나에게 되돌려준 페트병을 안타깝게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 나는 그저 아무 색도 없는, ‘물색깔의 물’을 마시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들, 너희 집 정수기 참 좋아 보이더라. 공간도 안 차지하고."
"엄마, 제가 해드릴게요. 얼마 안 해요."
"아이고, 안 해줘도 되는데… 사용해보니 좋디?"
"응, 결명자 끓이는 것보다 훨씬 낫지."

집들이에 오신 어머니는 정수기를 보고 부러워하셨다. 형도 아마 어릴 적 나만큼이나 ‘물 좀 그만 끓이라’며 불평했을 테니, 어머니도 내심 형의 말에 신경이 쓰이셨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부모님 집엔 결국 설치가 되지 않았다.


"아이고, 이제는 집에 결명자 물 안끓여도 되나, 내심 좋아했는데"
"그러게요. 우리 집이랑 수압이 크게 다르지도 않은데...다른 정수기 알아봐줄까요? 대신 공간은 좀 차지할 거예요."
"그래? 아니야. 그럼 됐어. 엄만 부엌에 자리 차지하는 게 더 싫더라."


결국 어머니는 여전히 물을 끓여 드실 수밖에 없다.

나는 빌트인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공간을 덜 차지하는 정수기를 꼭 찾아드리고 싶다. 어린 시절, 노란빛 페트병을 들고 다니던 내 기억은 이제 부모님께 더 나은 물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칠순을 넘기신 어머니, 이제는 결명자가 아닌 ‘물색깔의 물’을 드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PJHW0391.jpg 결명자 말고, 그냥 물 말이다. 이제는 어머님도 수고를 조금 덜어 내시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