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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09. 2023

김치전의 추억

비 오니깐 김치전이 땡겨요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태풍이 북상 중이라며 내일 수업들이 하나둘씩 취소문자가 도착하고 있다.

울산도 태풍이 관통을 한다느니 피해가 있을 거라느니 걱정들이 많지만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이 없기에 집을 돌아다니며 문을 닫고 점검을 해본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를 아들이 부른다.


" 엄마 오늘 비도 오는데 김치전이 땡겨."

" 그래? 김치전 먹고 싶다고, 김치전은 만들기 쉽지. 비 오니깐 우리 해 먹자."



김치를 꺼내 썰다 보니 문득 어릴 적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아 파전과 김치전을 먹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친정아버지는 전을 참 좋아하신다. 특히 땡초 팍팍 넣은 파전이나 부추전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엄마는  늘 매운거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한 땡초 들어간 반죽과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우리 삼 남매를 위한 반죽 두 가지를 만드셨고 꼭 따로따로 전을 구워 주셨다.


엄마가 전 한 장을 구워주면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우리 삼 남매. 빨리 달라고 젓가락 빨고 있음 또 한 장이 접시에 올라온다. 그럼 또 순삭

그러길 수없이 반복하고...

엄마는 굽기 바쁘고 우리는 계속계속 전을 뱃속으로 집어넣는다. 실컷 먹고 배부르다며 삼 남매는 밥상을 떠난다.


이제 마음 편히 앉아서 먹어야 할 엄마는 밥상에 앉을 새도 없이 우리의 전 파티는 끝이 난다.

하지만 엄마는 전 굽다 전 냄새에 질려 결국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밥상을 떠난 자리에 혼자 먹으면 맛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얼마 전 전을 한 장씩 한 장씩 내어주다 보니 나는 젓가락을 댈 세가 없이 두 아들이 먹어 치우는 걸 보고야 엄마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 한 장만 내는 게 아니라 세 장정도를 구워서 한 번에 내고 한 장을 프라이팬에 올려놓은 후 가족들과 함께 먹는 방법을 택했다.

그랬더니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전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엄마도 그랬으면 우리와 같이 둘러앉아 함께 전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세 장을 한 번에 구워서 내면 밑에 두장이 식어 버린다는 것이다.

엄마는 따뜻할 때 먹는 전이 맛있다는 걸 아셨기에 자신은 먹지 못하더라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전을 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따라 가려면 나는 한참이 멀었나 보다.




얼마 전 친정 할아버지 제사가 있어서 갔더니 이미 제사 음식을 다해 놓으신 엄마

근데 전 한편에 놓여있는 부추전이 보인다.


" 엄마 제사상에는 부추전은 안 올리는데 왜 했어? 힘들게."

" 아빠 좋아하시니깐 전 굽는 김에 했어. 너도 먹어봐. 오른쪽에 있는 건 땡초 들어간 거니깐 왼쪽에 땡초 없는 걸로 먹어."


엄마는 여전히 매운 전과 맵지 않은 전 두 가지를 굽는다.

우리가 어릴 때도 그랬던 것처럼...

 

한 번은

" 엄마 귀찮게 반죽을 두 개나 해? 땡초를 썰어놓았다가 아빠 드실 거만 땡초 살살 뿌리면 되지? 그러면 반죽은 하나만 하면 되잖아?"

" 그렇게 하면 편하긴 하지만 매운 향이 전에 베이지 않아서 매콤하지 않단다. "

"아~~"


전 하나에도 정성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는 울 엄마. 나는 여전히 밥 하는 것도 귀찮고 정성스러운 밥상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고 하기 싫은데

평생을 가족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우리 아이들은 지금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언젠가는 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다.


아들이 먹자고 한 김치전을 준비하면서 정성스레 전을 굽는 엄마가 생각이 나고 매운 땡초 듬뿍 넣은 전을 맛있게 드시는  아빠가 생각나고 셋이서 서로 많이 먹겠다고 젓가락 싸움하던 그때의 우리 삼 남매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함께 김치전을 먹고 있는 두 아들은 이 시간이 어떤 추억으로 남을까?




둘째가 김치 써는 것을 도와주고 양파도 계란도 가져다준다. 김치전은 참 간단하다. 김치와 양파 계란 부침가루 물만 넣어도 맛있는 김치전이 완성이 된다.

찍어 먹을 간장도 필요 없이 김치만으로 간이 완벽하다.

양파와 계란이 더해지면 전이 달콤하면서 부드러워진다.



아들과 함께 준비한 김치전이 행복한 추억 속으로 데려다준 날이다.


엄마의 얇고 촉촉한 김치전이 그립지만

나의 김치전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들 보니 또 행복해지는 날이다.


태풍 전야 속 김치전 두 아들은 잊지 않겠지?



#김치전 #파전 #부추저ㆍ

#추억음식

#비오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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