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가 사는 이유?

by Bagette J


윤서가 사는 이유?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는 치과가 너무너무 싫다..

어렸을 적 치과에 대한 잘못된 환상이 머릿속에 새겨져

그곳에 가느니 혼자 이를 빼는 게 낫겠다 싶어

혼자 실하나 걸고 하루 종일 씨름하며 이를 뺀 적도 있고


신경치료가 너무 무서워서 미루고 미루다 한번 받을 치료를

여러 번 나누어서 받았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남아있다

입도 잘 못 벌려서 강제로 벌려진 상태서 세상 온갖 기구들과

아픈 곳만 골라서 찌르고 파내시는 선생님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흔히 너는 먹기 위해 사니? 살기 위해 먹니?라는 물음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겠지만 윤서는 요즘 먹기 위해 세상을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자기가 배고프다던가 아니면 아빠가 먹는 것을 볼 때면

여지없이 아~~라고 외치면서 뭐든지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토속적인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잠자리에 들 때면 잠은 자야하고 먹고는 싶은 이중적인 자아가

형성돼서 엄마와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주장과 협상 끝에

꼭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먹을 거를 손에 쥐고 자는 윤서

치즈.. 사탕.. 과자.. 등등 작은 손으로 움켜쥐며 잘 때도 빼앗아가면

번개같이 일어나서 다시 손에 쥔 것을 확인해야 다시 잠드는 먹순이


이런 윤서는 원래 가지고 있는 병 때문에 재작년 웃는 사진에서는

건치대회를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예쁜 치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멀쩡했던 이가

부러지고 썩고 없어지길 반복하다 지금은 쓸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어

치과 교수님도 난감하고 아빠 엄마 마음은 쓰리고 쓰린 참담한 심정이다

이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천사인데


전신마취를 해서 윤서의 이를 어떻게든 치료해야 하지만

이것마저 쉽지 않으니 힘들겠지만 2개라도 응급조치하기로

2주 전에 약속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찾아온 치과

1주일 전에 왼쪽 아래 어금니가 없어진 자리에 무언가를 씹으면서 붓다가

거대한 풍선처럼 되어버렸고 이제 음식물을 씹다가 건들면

피가 거침없이 쏟아지고 아프다고 울기까지 해버리니

응급조치할 부분이 3군데가 되어버렸다


아빠와는 달리 그래도 씩씩하게 아픈 와중에도 입도 잘 벌리고

잘 참으면서 치료를 받는 윤서 (아빠보다 낫네)

윤서의 머리와 몸을 잡고 있으면 윙윙 거리는 기계의 진동이

윤서의 얼굴을 감싸는 내 손끝을 지나고 내 마음까지 전달되어

눈물이 당장이라도 흐를 것 같았지만


내 마음과는 반대로 "괜찮아 윤서야 다 끝났어"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내가 못 버티겠으니 빨리 끝내주세요라고 빌고 또 빌었다

양치도 잘하고 사탕도 단것도 늘 달고 사는 것도 아닌데

아이에게 찾아온 이병은 삶의 낙인 먹는 즐거움도 빼앗아

가려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과 분노 안타까움 속에서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길었던 40분의 치료시간이 끝났다


부었던 잇몸은 잘라내었고 그 다음날 아침까지 피가 잘 마르지 않아

거즈를 입에 물고 밤새 전전긍긍하게 했으며 며칠이 지난 지금도

피가 평소보다 많이 나는 것 같다


치료하기로 했던 2개의 치아 중 1개는 더 이상 윤서의 먹는 즐거움을

빼앗아 갈수 없기에 하나는 교수님께서 씌워주셨고 하나는 응급처치를

해주셨다 그리고 이어진 심장 외래와 신장 외래

빨리 망가지고 있던 심장들은 투약 양을 늘리고 조금은 잠잠해져서

이번에 그대로 유지하고 일단 2달 있다가 다시 뵙기로 했으며


신장은 심장약을 과도하게 복용하기도 하고 작은 혹이 의심돼서

진료를 보기 시작했는데 근본적인 해답이 없는 특수한 상황이니

소변에서 피가 나오거나 하지 않으면 다른 검사도 많으니 부담안 되게

6개월 뒤에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하자고 하셨다

물론 윤서에게 아무 일이 없다는 전제하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기간이다


공룡 화석같이 책에서만 보고 실제로는 보기 어려운 윤서의 병

경과도 자료도 거의 없어도 교수님들은 아실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윤서의 미래에 대해 살짝 돌려서 물어보면 역시나 교수님들도

명확한 게 하나도 없으니 지켜보자고 하시며 말을 돌린다


그래도 오늘은 아빠가 용기를 내어서 교수님에게 어려운 질문을

돌려서 말하지 않고 여쭤본다

교수님 이제 윤서 6살인데 영구치가 나는 걸까요?

이제 파미드로네이트 주사도 맞는데 영구치가 나오면

이빨도 뼈인데 관리 잘하면 튼튼하게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 날것 같은데..라고 하시며 오늘도 끝끝내 명확한 대답은

피하시고 다음 일정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구치? 날지 안 날지 그리고 나더라도 어떻게 관리될지 모르겠다

그저 먹는 것을 삶의 축복으로 여기는 윤서에게 더 이상 아빠처럼

가혹한 기계들의 진동과 아픔의 기억을 심어주지 않고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행복을 많이 많이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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