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이 말라가는 것을 느낀다. 초등학생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절, 반 친구들과 떨어지는 게 싫어 반 친구들에게 손 편지를 하나하나 건네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이 그리 슬펐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었다.
쓰던 필통도 2년 정도 사용하면 정이 들어버려 망가져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 때에도, 속으로 필통에게 '미안해'라고 고마움을 전하며 버리기도 했었다.
그때에는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우러나왔고 또 그것이 나에게 살아가는 실감을 주었다.
하지만 삶을 거듭할수록 그때만큼의 감동을 느끼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든 어떤 새로운 일을 경험하든 무언가 익숙하고 고리타분하다.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도 최근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이 이렇게 변해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좋은 징조로 봐야 할지 아니면 나쁜 징조로 봐야 할지 스스로에게 고민이 많던 도중 어느 책에서 읽은 동자승 이야기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한 동자승이 있었다.
동자승이 절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무렵, 스님은 그에게 매일 정원을 청소하라고 했다.
가을이 되자 정원에 낙엽이 쌓이기 시작했다.
동자승은 매일 여러 번 힘들게 낙엽을 쓸고 또 쓸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청소해도 바람이 불면 낙엽은 다시 우수수 떨어졌고, 그는 다시 청소를 해야 했다.
하루는 한 스님이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정원을 청소하기 전에 나무를 흔들어 낙엽을 떨어뜨려보렴. 그러면 청소할 때 여러 번 쓸지 않아도 될 거란다."
동자승은 당장 이 방법을 쓰기로 정했다.
다음 날, 동자승은 아침 일찍 정원으로 나가 온 힘을 다해 나무를 흔들어 낙엽을 떨어뜨렸다.
그는 떨어진 낙엽들을 치우며 내일까지는 청소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그는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다음 날 정원에는 낙엽이 다시 가득 쌓여 있었다.
동자승이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스님이 다가와 말했다.
"오늘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내일도 여전히 낙엽은 떨어질 거란다."
스님의 말에 동자승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의 변화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기쁜 마음으로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인생 아닌가!'
동자승의 마음속에 번뇌와 좌절감 등의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낙엽을 청소하는 고된 노동을 통해 값진 진리를 깨달았고, 그 뒤로는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나이가 들고 삶에 무던해지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이 성숙해지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자극을 받아도 마음에 상처받을 일이 적어지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나의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사람의 성격이 어찌 평생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라는 것에 변함이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마음의 껍질은 두껍고 단단해지겠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나'라는 가치는 항상 변함이 없을 것임을 이젠 안다. 그것이 거세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주춧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