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자까 Jan 14. 2023

의지(意志) : 장애인으로부터 배운 살아가는 법

나의 대학생 이야기 (2)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는 나이나 직업 같은 사회적 위치와 관계없이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우러나게 하는 성품이 갖춰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꼭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남들이 당연시 여기는 것들이 없을 때 사람은 그 소중함을 알고 더욱 절박해지기 마련이다.


오늘은 내가 사회복무요원(공익)으로 군복무하며 알게 된 어느 한 장애인 학생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4급 보충역입니다."

"예?"


 흰 눈이 내리는 겨울, 나는 신체검사에서 사회복무요원을 판정받았다. 이유는 활성화된 B형 간염과 높은 간수치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몰랐지만 어머니한테 물어보니 본인이 B형 간염 보균자라고 하셨고 그것이 나에게 유전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한 달간의 훈련소 생활을 끝낸 후, 모교 중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을 도와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첫 근무일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5년 만에 돌아온 모교는 생각보다 바뀐 게 많지 않았다. 교실 나무바닥에서 나는 익숙한 냄새, 익숙한 복도, 익숙한 종소리. 모든 것이 그대로이었지만 바뀐 것이라면 그것들은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첫 출근 후 수위 아저씨 안내로 근무복을 받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나이는 몇 살이야?"

"21살입니다."

"거, 공익으로 왔다고 출근 늦고 그러면 안돼. 지켜볼 거야."

"예, 알겠습니다."


 아직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으름장부터 놓으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이전 공익이 근무태도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상습적 지각출근에 결근 물론이고 학교에서 담배까지 피우다 걸렸었단다. 억울하지만 학교에서 공익을 반가워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간다.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내 자리가 있는 교무실로 안내받았다.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교무실에 오니 모든 풍경이 재밌게 보였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는 학생, 선생님과 재밌게 얘기를 나누는 학생,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러 찾아온 학생.

 활기찬 분위기에 잠시 감상에 젖어있을 때 어느 한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OO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 학교에서 특수학생을 맡고 있는 △△△ 선생님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장애인을 대하시는 건 익숙하지 않으시죠?"

"예,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어색할 거예요. 자꾸 보면 금방 친해질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럼 인사도 나눌 겸 우리 애들을 보러 한번 가보실까요?"

"...... 예?"


 갑자기 특수학생들을 만나러 가자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순간 당황해 버렸다. 나와 전혀 관련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과 만날 생각에 괜한 긴장감이 생겼다.


 우리 중학교에서는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같이 수업을 듣지만, 쉬는 시간에 장애인이 쉴 수 있는 별도 특수교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첫 대면.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 3명과 신체장애를 가진 학생 2명이 있었고, 그중에서 내가 도와줄 아이는 신체장애를 가진 2학년 학생이었다. 온몸의 근육이 점차 퇴화되는 희귀병으로 휠체어에 누워있는 채 스스로 거동조차 불가능한 아이였다.


 

'이런 몸으로도 살 수 있구나.'


 그 아이를 처음 본 순간 느낀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내 미숙한 실수로 뼈만 남은 것 같은 앙상한 신체를 혹시 다치게 할까 불안감이 앞섰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내가 맡은 일은 주로 이 학생이 수업을 들을 때 필기를 해주거나, 대소변 처리, 등하교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어색한 동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이 아이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 그것은 심리상담사가 되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씨를 갖고 있는 아이였다.


 

 

  그렇게 우리는 군복무를 마친 후에도 종종 연락하며 한 번씩 직접 만나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곤 했다. 최근에는 고맙게도 나의 결혼식까지 축하하러 와주었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모 대학교 심리학과를 입학한 후에도 여러 사람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기 위해 대학생기자단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지금도 진행 중인 그의 꿈을 향한 여정에 작은 응원을 보낸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이 풍족해야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지하철에 사는 노숙자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가진 것이 풍족한 사람은 그것을 더 불릴 생각만 하지 남들에게 나눠줄 생각은 좀처럼 잘 하지 않는다. 재벌이면서 정의감까지 투철한 사람은 아이언맨이나 베트맨 같은 영화 속 인물이나 가능할 것이다.


 군복무를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들과 똑같은 처지였다면 어땠을까? 걸음조차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현실로 인해 우울증에 빠져 폐인처럼 지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삶의 의지를 불태워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한 친구를 보며 중요한 건 출발선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은 각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다. 누군가는 돈 많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금수저 인생을 살고 있고, 어떤 이는 몸이 불편하여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자본이 한정된 세상에서 모두가 공평하게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다. 당신의 삶은 유한한 우주에서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지하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천만금을 얻어도 불행하겠지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흙바닥에 굴러도 행복할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현실에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한 친구처럼.

이전 03화 인연(因緣) : 삶의 끝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