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권으로의 대학진학은 독립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자유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셨다. 대학등록금은 집에서 줄 테니 생활하면서 필요한 돈은 스스로 벌어 쓰라고 하셨다. 주변에 학자금 대출까지 받으며 스스로 갚아나가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첫 아르바이트는 대형마트 카트정리를 담당했다. 일의 고단함보다도 스스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보람이 되어 2개월 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대학교 개학시기가 다가오고 첫 독립생활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숨 막힐듯한 불편함에 밖에 나가면 기숙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4인 1실로 된 기숙사 구조는 원룸 남짓한 좁은 공간에 사람을 욱여넣어 사육당하는 돼지가 된 느낌을 주었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타인과 함께하는 공동체생활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불편함 속에서도 금세 적응하여 생활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만난 동기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함께 족구대회를 나가기 위해 매일 새벽마다 연습을 하며 서로에 대해 깊이 알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집에서 떨어져 시작한 독립생활은 부모님의 품이라는 우물 안에서 나와 세상의 넓음을 배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나름대로 전교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기 때문에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비슷한 성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대학교에서는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이 학교를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해 합격한 나와 달리, 원하던 학교에서 떨어져 하향지원하는 친구도 적지 않았고 실제로 그 친구들과 같이 공부해 보면 능력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음을 감사했다.
사람은 아래만 봐서는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배울 점이 적기 때문이다. 반대로 위를 보면 배울 점이 많지만, 대부분 현재 내 능력으로 달성하기 힘든 것들 투성이다.
그래도 이 친구들은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되어주었고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생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삶의 원동력'이었다.
2012 전국 대학생 카드가위바위보 대회
덕분에 혼자였다면 결코 시도해보지 못할 경험들을 많이 했다.
여러분들은 혹시 한국에 전국단위로 열리는 가위바위보 대회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가? 청바지를 입은 한국 가위바위보협회장의 존재를 아는 것은 전국에 몇 안될 것이다. 기숙사 동기의 소개로 알게 된 이 대회를 참가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땐 몇몇 사람은 무슨 그런 대회를 나가냐며 조롱 섞인 농담을 던지곤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특이한 경험은 면접관의 주목을 한 번에 이끌 수 있는 내 이력서의 한 줄이 되었다.
2박 3일 지리산 종주
또, 2박 3일 겨울철 지리산 종주도 다녀왔었다. 평소에 등산을 좋아해 전국의 많은 산을 다녀왔는데, 지리산 종주는 아직 넘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그때, 등산을 좋아하며 도전정신이 뛰어난 기숙사 친구의 권유로 함께 도전했었고 눈 내리는 겨울산을 오르기는 생각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산을 오르며 체력의 한계가 올 때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훨씬 나이가 많은 분들이 능숙하게 오르는 모습과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오기로 오르는 친구 덕분에 나 역시 자극을 받아 무사히 종주를 완수할 수 있었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군대를 들어가기 전까지 이야기를 정리하며 든 생각은 '지금의 나를 이루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구나'이다.
누군가가 쓸모없다고 여긴 경험은 남들에게 없는 독특한 이력서 한 줄이 되어주었고 친구의 도전정신은 곧 나의 도전정신에 불을 붙였다.
누구나 살면서 다양한 사람과 만난다. 그중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서부터 코드가 맞아 오랫동안 함께 지내는 사람, 실제로 본 적 없지만 책이나 티브이로 본 사람 등 다양한 인연이 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해야 하는 인연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의외로 가장 베프라고 여겼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버스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삶의 끝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버스를 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내릴 것이다.
나와 전혀 연관 없어 보였던 사람이 내 버스에 올라탈 수 있고 끝까지 함께할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내릴 수 있다.
내 버스에 누가 탈지 알 수 없을뿐더러 본인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 내리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을 순 없다.
중요한 것은 내 버스에 오고 간 인연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배웠는가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과 만날 기회가 생기더라도 배울 것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인연이다.
선입견을 갖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 지금 내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