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는 편지 3]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 셀 수 없이 많은 시간 이런 고민을 했지만, 내가 아닌 남을 통해 스스로의 몰랐던 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날도 역시.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다. 주말이었지만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한 우리는 오후에 교회를 찾았다. 당시 학교 앞 교회에서는 토요일 오후에 영화를 무료 상영했다. 하교길에 우연히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을 상영한다는 공지를 본 우리는 그날 오후 교회를 찾았다. 보고 싶던 영화였지만 기회를 놓쳤던터라 기꺼이 시간에 맞춰 교회 문을 두드렸다.
역시나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0대의 풋풋함은 없지만 주름조차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 다이안 키튼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특히 이 작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내 삶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해변가에서 아름답다며 흰돌만을 줍던 다이안 키튼에게 잭 니콜슨은 자신을 기억해 달라며 검은 돌은 건넨다. 어찌보다 검은 돌과 흰 돌처럼 너무도 달랐던 두 사람,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는 조금씩 끌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본 후 까맣게 있고 있던 화이트데이, 당신은 잭 니콜슨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유리병에 검정색 페레로로쉐 초콜릿을 담고 그 중앙에 화이트 페레로로쉐 초콜릿을 하나 담아 내게 선물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나와 만나는 과정에서 느낀 좋은 점과 때로는 나로 인해 힘들었던 속내를 적어줬다. 혹여 말로 하면 상처가 될까 편지에.
나는 몰랐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투정부리며 때로는 상대를 조금은 힘들게 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의 발견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때 당신이 준 편지 내용을 지금도 생각하며 산다. 사귀는 남녀 사이가 아니더라도 혹여 나의 이런 면이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은 불편한 감정을 주지 않을까 하여. 가장 옆에 있기 때문에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아봐준 너. 그리고 그런 나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준 덕에 요즘도 스스로를 돌아본다.
우리는, 스스로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늘 고민하며 산다. 그리고 당황스럽게도 가끔은 나의 진면목을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발견한다. 그리고 아기처럼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때로는 뼈아프게, 때로는 달콤하게 나를 알게 해준 너. 함께 영화를 봤던 이 맘 때가 되면 네가 문득문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