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는 편지 4]
요즘도 누런 서류봉투를 보면 괜시리 마음이 설렌다. 꼬깃꼬깃, 누런 봉투에 '축 생일'이라고 투박하게 쓴 글씨 그리고 그 선물을 건내며 장난기 가득, 환한 미소를 짓던 그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게 사랑이라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그는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돌이켜보면 예상치 못한 이벤트 강자였다. 어떤 때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작은 이벤트 하나로 큰 감동을 주는, 마음을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생일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100일 혹은 생일, 1주년 등 만남의 시간이 오래될 수록 각종 기념일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진다. 직장을 구하느라 혹은 갓 입사해 정신없이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단순히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때도 그랬다. 바쁜 일상 중 그래도 생일을 맞아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집 앞에서 헤어지던 때, 그는 예상치 못한 꽤나 커보이는 누런 봉투 하나를 건넸다. 직접 박스테이프로 밀봉한 삐뚤빼뚤한 모양새가 뭔가 엉성해 보였다. '축 생일'이라고 쓴 그 글씨는 또 어땠나. 웃음이 절로났다. 남몰래 준비한 생일선물이었다.
집에 들어가 조심스레 뜯어본 봉투 안에는 지난 몇 달간 용돈을 모아 샀다며 내게 꼭 사주고 싶었다는 쪽지와 함께 예쁜 원피스가 들어있었다. 용돈을 받아 생활하던 그때 매달 얼마씩 모아 꽤 값이 나가던 그 옷을 구입한 것이다.
그 감동이란..
맨날 장난만 칠 줄 알았던 그가 남몰래 몇 달간 내 생일을 위해 돈을 모으고 내 생각을 하며 선물을 준비했다고하니 감동이 밀려왔다. 말하지않아도 그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는 그랬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감동을 주는 사람. 그래서 평소 섭섭한 것이 있어도 한 번에 눈녹듯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
그래서일까. 지금도 일을 하다 누군가 보낸 누런 서류봉투를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시려온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이렇게 작고 소중했던 추억들 하나하나를 가슴 속 깊이 묻는 과정이다. 잊을 수 없지만, 그 감동과 기쁨 혹은 슬픔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무뎌져감에 감사하는. 그러면서 망각이란 게 얼마나 큰 신의 선물인지를 하루하루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