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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프리 yefree Oct 29. 2022

그 개 때리지 마세요, 아저씨



개집이 사라진 걸 보고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이어 그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저런 개는 안락사 시켜야 하는데.' 정말 주인 할아버지가 누렁이를 안락사 시켜버렸나. 더 심각하게는 개소주를 만드는 보신탕집에 팔아버렸으면 어떡하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 동네에는 365일 24시간 1m도 채 안돼 보이는 짧은 쇠 목줄에 묶여 사는 누렁이가 있다. 산책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저렇게 키우는 주인도 싫었다. 나라도 친해져 놀아줘야겠다고 다가갔지만 이미 사회화 시기를 놓친 건지 으르렁대며 경계했다. 그 뒤로 멀리서만 지켜봤다. 오고 갈 때 항상 자고 있는 그 개를 보는 게 마치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잘 있으려나?' 아무도 모르는 내적 친목이다.


늦은 밤 귀가하던 날도 그랬다. 늘 그랬듯 무의식적으로 개가 있는 쪽을 보았는데 남자 세명이 그쪽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이윽고 한 남자가 흰 물체로 개가 있는 쪽을 강하게 여러 번 내려치는 게 보였다. 누렁이는 주차장에 묶여 사는 개였으므로, 그 장면이 주차된 차량에 의해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어쨌거나 말려야 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남자가 내 목소리를 듣고 흠칫 놀라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우습게도 그제야 겁이 덜컥 났다. 나를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심지어 한 명도 아니고 저쪽은 세명인데.


남자 셋은 많아봤자 3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한다는 말이 "저 개가 자기를 먼저 물었기에 버릇을 고쳐주려고 겁만 준거다."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건물 밖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서다가, 개 앞을 못보고 지나가는 바람에 물렸다고 했다. 실제로 거긴 조명 하나 없기 때문에 충분히 그 남자가 개를 미처 보지 못했을 수 있다.


차분하게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그래도 개를 때리면 어떡하냐. 잘못이 있다면 주인에게 있는 것이지 어차피 짐승은 말귀를 알아먹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술에 취해 행동이 격해진 그 사람은 말이 이성적으로 통하지 않았다. 저 개가 자기를 먼저 물었기에 본인이 한 행동은 '정당방어'라고 항변했다. 정당방어가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적용되는 법률인지는 미처 몰랐다. 그렇다면 그 개의 집 앞을 지나간 남자는 '주거침입죄'를 물어야 하나?


본인이 물려보면 이런 태평한 소리를 할 수 없을 거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아니지만 우리 아버지가 동네 개들에 물려보신 적이 있다. 물론 그때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물론 그 개들의 주인에게 말이다. 공격성이 있는 걸 알면 제대로 묶어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사고를 만든 주인에 화가 났다.



누렁이도 마찬가지다. 잘못이 있다면 개가 아니라 주인이다. 애초에 거의 방치하듯 밖에서 묶어놓고 키워 사회화 시기를 놓쳤다. 또한 입구 쪽에 <개 조심>라는 팻말을 걸어 사람들에게 미리 주의를 줬어야 했다. 혹은 조명을 달아 길을 밝히는 것도 하나의 예방 방법이다.


이 사건 이후로 말썽이라고 정말 개 집에 팔아버렸으면 어떡하지 걱정됐다. 주인을 살렸지만 정작 개가 크게 다치자 병원비가 비싸 도살자에게 돈을 받고 판 얘기까지 덩달아 떠올라 심란했다.


하지만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 자리에 누렁이가 자고 있었다. 다행이다. 죽지 않았구나. 아이러니했다. 그 개가 그 같은 자리에 항상 묶여있는 게 참 싫었는데, 눈에 밟히는 게 싫었는데. 차라리 없어진 것보다 이게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살아 있어는 줘서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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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liese Streeflan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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