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힌 지 약 3년 만이다. 엔화도 떨어졌겠다, 거리도 가까운 일본에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어찌나 설레었던지 수속을 밟는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 추운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노천탕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뜨끈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일본에선 한 해 교통사고보다 목욕하다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기 전까진 그랬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공기는 얼음처럼 차갑고 주위는 온통 순백의 겨울왕국 같다. 하지만 내 몸은 족히 40도가 넘는 뜨거운 물 안에 잠겨있기에 춥지 않다. 이 모순적인 간극의 사이에서 마치 자연을 상대로 이긴 것만 같은 묘한 착각마저 든다.
탕에서 나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방에 들어가기 위해 계단에 올라섰다. 그 순간 시야가 잘 보이지 않으면서 눈앞이 까매졌다. 동시에 주위 소리도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해졌다. 누가 심장 위에 무거운 납덩이를 올려놓은 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왔다. 살면서 처음으로 죽을 수 있겠다는 극도의 공포심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자리에 바로 주저앉았다. 차가운 나무판자 위였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고 엄마도 패닉이 왔다. 그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내 머리는 생각이란 걸 했다. '여기는 산 속인데 쓰러지면 병원에 어떻게 가지?'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단 생각에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물도 연거푸 마셨다. 10분쯤 지나자 그제야 눈앞의 안개가 걷히고 살 것 같았다.
한국에 와서야 이게 '히트쇼크'라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 기온이 급격히 바뀔 때 많이 발생하는데, 추워서 수축돼있던 혈관이 갑자기 팽창되면서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는 저혈압 증상이다. 여기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뇌진탕 혹은 물속으로 넘어져 익사까지 당할 수 있다. 최근엔 일본으로 여행을 간 한국인 3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바로 욕조로 뛰어들면 큰일 난다. 몸에 뜨거운 물을 천천히 뿌려가며 입욕을 하거나,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체온을 높여놔야 한다. 그리고 만약 목욕 중 쓰러졌다면 머리로 가는 피가 부족하기 때문에, 다리를 머리보다 높게 해 머리로 피가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연은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애초에 아니다. 부디 모두들 안전한 여행 하시길 바란다!
무사히 살아 돌아와 일본 온천 여행 vlog를 만들어보았어요. 히트쇼크 당한 것만 빼면, 아름다운 풍경에 맛있는 밥까지 먹을 수 있어서 넘나 행복했습니다!! 위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어요 ㅎ3ㅎ
- 참고 영상: 교통사고보다 목욕하다 죽는 사람이 많다? '히트 쇼크' 대응법은?/ 스브스뉴스
- Photo by Tayawee Supa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