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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라는 이상한 명함

잠자코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절대 부질없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오전 내내 노트북과 씨름을 하다가 

도저히 더 이상은 글이 나오지 않아서 집을 나섰다.

출근 전에 학원 근처 카페에 들러 다만 한 시간이라도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어서다.

갑자기 하늘이 시커메지고 후드득 빗줄기가 떨어졌다.

장마 시작이다.

노트북이 젖을세라 가방을 끌어안고 카페로 뛰어들었다.

오전 내내 마신 커피로 오늘의 카페인 함량은 이미 내 몸에 꽉 찬 상태라

딸기 주스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노트북을 켠다.






창밖으론 빗줄기가 몰아치고 갑자기 비를 만난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뛰어간다.

내 노트북의 커서는 오전에 멈춘 그곳에서 계속 깜빡인다.

갈길을 정해 달라는 구조요청 신호 같다.






브런치 작가라는 명함을 얻었다.

이 브런치 작가라는 명함은 좀 이상하다.

무슨 작품이 있어서 주는 명함이 아니다. 

물론 작품과 기획서를 냈고 나는 브런치 심사라는 것을 통과해서 작가라는 명함을 얻었다.

그 명함은,

이제 너에게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쓸 자격을 주겠다.

그러니 이제부터 열심히 글을 써라, 라는 일종의 허가 자격증 같은 거다.

심사 통과를 받은 그날 뛸 듯이 기뻤다.

이제부터 열심히 글을 쓰겠다며 의욕이 넘쳤다. 

매일매일 쓰리라 다짐했지만 그건 좀 힘들었다.

2주일도 안 지나서 나는 지금 꾸역꾸역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발행을 누르면

내 글은 곧바로 세상으로 나간다.

난 나의 글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으로 내 보낸 나의 글이 독백이 되어 내게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마음으로 파고들고, 누군가의 책갈피에 접혔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의 글은 세상 허공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기분이 든다.

떠돌다 흩어지는 것 같다.

글을 쓰다가 나도 모르게 "부질없다"라고 쓰고 있었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내 글을 누가 읽는다고.. 부질없다...

마음 가는 대로 쓰다가 화들짝 놀라서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쓸 수만 있게 해 달라며 간절히 브런치 심사 통과 메일을 기다렸다.

그게 겨우 2주일 전이다.

그 사이 네 꼭지 정도의 글을 썼다.

예전처럼 혼자 글을 썼다면 그냥 또 아무 생각 없이 썼을 것이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혼자 기획하고 글을 써내기에 아주 훌륭한 플랫폼이다.

나는 이제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기획을 하면서 챕터를 나누고 꼭지 글을 쓰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작가 활동에 세상 사람들이 나서서 기립박수를 칠 거라고 기대했다면 그것이 난센스였다.

2주 전에 비하면 정말 훌륭한 발걸음이 아닌가? 부질없지 않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감사하며, 잠자코 주제를 알고 성실하게 농사를 짓듯이 매일매일 글을 쓰리라 다짐한다.

비가 온다,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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