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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도 전단지도 배너도 없이 오직 블로그, 블로그,

더 단단해지고 날이 서다

원장님, 블로그 꼭 하셔야 합니다.



 내 인생은, 45세를 전후로 나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45세까지는 주부였고 45세 12월부터 학원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은 정말 많이 변했다.

그리고 이 한마디, 원장님, 블로그 꼭 하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듣기 전과 들은 후의 내 인생도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이 한마디를 듣자마자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블로그가 뭔지도 몰랐고 인터넷의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게 글이란 다이어리나 워드에 쓰는 것이었다. 컴맹 수준의 나의 능력으로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이 줄곧 귀에 맴돌고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원래 나는 뭔가를 쓰는 인간이었다.  쓰는 것이 낯선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글은 나만의 글, 나만의 독백이 되는 글이지 누군가에게 닿는 글이 아니었다.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에  글을 쓰고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낯선 욕망이 꿈틀거렸다. 시작하기도 쉬웠다. 포털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들어가 블로그를 열고 그냥 쓰면 됐다. 글을 쓰고 발행을 누르면 내 글은 세상으로 나갔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블로그여서 방문자수도 거의 없지만 내가 쓴 문장을 그대로 검색창에 치면 내 블로그가 검색됐다. 열린 공간에서 처음 내 글을 만났을 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누가 볼까 봐 얼른 창을 닫았다. 하지만 곧 궁금해졌다. 누가 내 글을 읽을까? 그들이 궁금했다. 방문자 수가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신기하고 짜릿했다. 그렇게 인터넷에서 내 글을 만나는 것은 낯설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그러나 떨쳐지지 않는 유혹이었고  중독이 강한 경험이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듯 그렇게 블로그의 글을 써 갔다.








블로그는 내가 펼치는 나의 그라운드




 내 블로그는 내가 주인이다, 내가 펼쳐놓은 잔치상이다.

한상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들은 나의 그라운드에 와서 둘러보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음식을 맛보고 즐기다 떠난다. 내가 차린 한 상이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맘껏 먹어주면 되고 맞지 않으면 창을 닫고 떠나면 그뿐이다. 맛있게 먹은 사람은 이웃추가를 하고 새로운 음식을 차렸다고 글을 발행할 때마다 다시 나를 찾는다. 나는 공을 들여 상을 차리고 손님들을 기다렸다. 손님들은 하루아침에 늘지 않았다. 내가 차린 잔치상은 소수를 위한 한 상이 었다. 다르게 영어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내 블로그로 모여들었다.

나는 나의 블로그에서 영어 관련 이야기들을 맘껏 했다. 

흔히 블로거들이 하는 음식 맛집이나 여행 같은 것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내 블로그는 거의 영어 이야기로 채워졌다. 달리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나는 짬을 내서 블로그를 하면서 그 안에 영어 관련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고, 간혹 영화나 책에 관한 글을 썼다. 시답지 않은 영화 평론 글을 올리면서 어렸을 적에 잠깐 꿈꾸었던 영화 평론가의 꿈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떤 글은 너무 과격해서 검색되지 말았으면 하는 글도 있었다. 그렇게 쓴 블로그의 글들이 현재 700개가량 된다. 약 5년간의 글 쓴 경력으로는 그리 많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밥먹듯이, 매일매일 글을 썼다고는 할 수 없다. 어쩐지 부끄러워지는 숫자다.







더 단단해지고 날이 서는 영어 관련 철학


 



신규 상담을 위해 엄마들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생각이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냥 단순히 쓰는 글이 아니라 내 생각을 피력하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좀 더 생각하고 숙고하고 논리가 정연해져야 한다. 나 자신도 납득시킬 수 없는 빈약한 논리로는 곤란하다. 도대체 왜 영어를 파닉스가 아닌, 듣기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너의 이야기를 좀 풀어봐라, 나를 좀 설득시켜보라고. 독자들은 팔짱을 끼고 내 글을 검열한다. 단단한 논리와 그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진정성이 블로그 글의 생명이다. 포스트를 하나둘씩 쓸 때마다 나는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했다. 물론 무엇보다 나만의 언어로 채워진 글이어야 하지만 읽는 사람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의미 없는 나만의 독백일 뿐이다. 독백은 일기장에 써야 한다. 공개되는 글은 독백이 돼서는 안 된다. 보통의 나의 글은 장황하기가 일쑤여서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두 시간은 훌쩍 넘기곤 했다. 할 말을 다하고 싶다는 욕심에 중언부언했다. 내 글의 고질적인 문제다. 고쳐나가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지병이고 난치병인가 보다. 그래도 나는 할 말을 다 했다. 보다 더 명확하게 쓰려고 노력했고 왜 듣기먼저 시작해야 하는지는 이미 나의 두아이의 경험과 학원을 거쳐간 아이들의 결과로 증명이 됐지만 그 논리의 근거를 찾기 위해서 책을 읽었고 백과 사전도 뒤졌다. 언어와 문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을 나의 언어로 쉽게 풀어서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의 논리는 좀 더 단단해지고 객관적이 돼 갔다. 블로그는 그런 힘이 있었다. 늘 하고 싶은 말을 했고 해야 할 말만을 했다. 그 말에 공감하는 이웃들이 늘어나고 어느 순간부터는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다. 그즈음부터는 블로그를 통한 신규 상담이 시작됐다. 






1인 원장의 필수 무기, 블로그




 세상은 전쟁터라며, 1인 원장은 살아남기 힘들다며 아우성을 치면서 이 전쟁터 같은 세상에 가볍게 손에 쥘 무기가 있다면 그건 반드시 쥐어야 한다. 먼길 가는 당신이 단 하나의 필수템을 가져야 한다면  필요한 것은 오직 블로그뿐이라고 극단적으로 말하고 싶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의 더 힙하고 다양한 채널들이 있지만 그래도 블로그는 여전히 빛이 바래지 않았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좋아하고 스토리에 열광한다. 당신이 운영하는 학원은 이미 훌륭하겠지만 거기에 스토리가 더해지면 당신은 무적이 된다.

실제로 학원으로 확장하면서 내가 했던 홍보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현수막도 배너도 전단지도 없었다. 블로그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나자 블로그를 읽고 신규 문의를 해오는 엄마들이 생겨났다. 지역의 영어 관련 검색어, 영어학원 관련 검색어에 나의 글이 제법 상위에 노출되고 있었다. 엄마들은 내 글을 한 두 개 읽고는 흥분해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했다. 상담 날짜를 잡고 그들에게 학원 관련 기본 안내가 담긴 블로그 글을 링크해 보낸다. 그 링크를 타고 내 글을 읽은 엄마들은 이미 우리 학원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다. 나는 신규 상담에 무척 공을 들이는 편인데 그 이유는 나의 학원이 그렇게 일반적인 학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원의 정체성을 얘기해야 하고 왜 듣기 먼저 하는지 그들을 설득해 내야만 한다. 영어를 듣기 먼저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설명하고 학원 아이들의 스피킹 수업을 녹음한 파일을 들려주며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 마치 진리를 설파하고 전도하는 심정이다. 나의 학원은 한 번 등록하면 3년은 기본으로 다녀야 아웃풋이 나온다. 그렇게 첫 상담에 공을 들이지 않으면 등록했다고 하더라도 하릴없이 떠나간다. 상담은 어찌 보면 엄마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 그것도 말로 설득해서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상담을 하다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 될 때도 있다. 상담을 한 모든 엄마가 나의 학원에 등록을 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조금 다니다가 떠나가도 상관은 없다. 다만 학원에 대한 오해는 없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렇게 상담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14년을 그렇게 말로 상담을 하고 글로 블로그에 쓰다 보니 이제는 툭치면 툭 나올 정도로 상담의 달인이 됐다. 뼈 때리는 말을 하자면, 모든 원장님이 자신의 학원의 전문가는 아니다. 툭 쳤을 때, 한마디로 자신의 학원을 정의할 수 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학원의 전문가이고 진정한 원장이다. 수많은 상담을 하면서, 블로그를 하면서 나는 나의 학원의 진정한 전문가가 됐다. 내가 특별해서 그렇게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블로그에 나의 영어 이야기를 쓰면서 점점 더 단단해지고 날이 섰을 뿐이다. 나는 1인으로 학원을 운영하는 모든 원장님들이 이것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블로그가 꼭 그들의 학원을 지켜주는 무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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