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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아웃, 나만의 스피킹 프로그램으로 벗어나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아웃풋, 스피킹



학교 운동장까지 쫓아가서 잡아 온 6학년 아이들


흔히들 하얗게 불태웠다고들 한다. 나도 그랬다.

에너지는 불타고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차오르기를 반복했지만

내게도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있었나 보다.

처음 영어공부방을 시작할 때, 딱 10년만 하자, 결심했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일이어서 10년이 지나면 55세가 된다. 그때는 10년도 길게 느껴졌다. 

10년 동안 미친 듯이 일하고 조용히, 박수 칠 때 떠나겠다는 것이 나의 최초의 결심이었다.

하지만 10년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상가로 나오고 3년이 지나자 그 10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스스로 정해놓은 피니쉬 라인이 저만큼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상가로 나온 뒤 학원은 거의 아이들로 포화상태가 됐다.

학원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훌쩍 넘었고 상담을 하는 것조차 두세 달이 넘게 대기를 해야 했다.

나는 아이들과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니 이것은 완전히 전쟁이었다.

사춘기를 맞은 6학년 아이들과는 특히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6학년 아이들은 막 사춘기를 맞이하여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깔깔거리고 까닭 없이 피가 끓어 얌전히 앉아서 책 읽기가 불가한 모양이었다. 특히나 우르르 몰려다니던 여섯 명의 6학년 남자아이들, 갱(?)들이 그랬다. 그 아이들을 혼내고 달래고 협박하며 수업을 해나가고 있었다. 하루는 수업을 와야 하는데 그중에 세명이 오지를 않았다. 수업에 온 아이 한 명이 그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피꺼솟의 심정으로 학원 문을 박차고 나갔다. 학교는 학원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에 있다. 바람처럼 뛰어가서 운동장으로 들어가니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소리 지르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진지하고 신나는지 무슨 프리미어 리그인 줄 알았다. 나는 운동장 한 복판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중에 한 녀석이 나를 보고는 유령이나 본 듯이 깜짝 놀라서 멈칫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나를 보고는 모두 다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저 쌤이 왜 여기에?? 유령인가? 싶었나 보다. 나는 그들의 프리미어 리그를  끝내버렸다.  아이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어정쩡한 얼굴로 끌려와서 그날의 수업을 했다. 몰론 복도에서 한차례 혼난 것은 당연했다. 그중에 한 아이는 현재 서울의 축구로 유명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됐고 축구부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그 아이 엄마는 얼마 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영어는 원장님이랑 5년 동안 한 게 전부인데 지금도 정말 잘해요!!"



나는 지쳐도 학원 아이들의 영어는 자랐다.



 엄청나게 많은 수업양으로 퇴근 후 밤이 되면 좀비처럼 완전히 너덜너덜해도 다음날 출근을 하면 어디서 오는지 모를 힘으로 학원 안을 날아다니며 수업을 했다. 만약 이것이 노동이고 그 강도를 수치로 따진다면 100점 만점에 200점이라고 생각됐다. 이건 완전 중노동이었다. 수업을 하다가 쓰러져 죽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중에도 학원은 점 점 더 소문이 나고 그 소문은 동네를 벗어났다. 차량 운행을 하지 않았음에도 멀리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었다. 언니가 다니는 이 학원에 곧 동생도 다녀야 해서 이사를 못 간다는 엄마도 있었다. 우리 학원 바로 앞 단지에 사는 엄마는 매일 이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이 단지 아이들은 복 받았다고도 했다.  내가 힘들고 지쳐가는 것에 비례해서 학원은 더욱더 커가고 있었다. 선생님을 고용하고 일을 나눠도 어쩐 일인지 내일은 줄지가 않았다. 스트레스를 풀 만한 변변한 취미도 없었고 10년을 넘게 오직 일만 하다 보니 그동안의 인간관계도 거의 끊겨 버려서 외롭기도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나는 일에 갇혀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학원의 아이들은 커가고 있었고 수년 동안 꾸준히 다닌 아이들을 중심으로 놀랄만한 아웃풋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바로 말하기, 스피킹, 자연스러운 영어 말하기였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여러 명이 비 그치고 맺혔던 꽃봉오리가 터지듯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아이가 혼자 다니며 원어민과  영어로 유창하게 말했어요!!




 2주일을 호주로 여행을 다녀온 은주의 엄마가 원비를 결제하러 와서는 흥분해서 외쳤다.

은주는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을 두 달 정도 다니다 질려서 그만두고 2학년 때 우리 학원에 왔다.

그리고 2년을 듣고 읽고 인풋을 채워가고 있던 차에 가족여행을 갔다. 은주는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뭘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아이였다. 호주를 여행하면서 어느 지역의 플리 마켓 같은 행사장에 가게 됐다. 그 마켓에서는 아티스트들이 자신이 만든 물건이나 그림을 옆에 놓고 팔고 있었고 작가가 직접 작품 설명을 해주었다. 엄마는 은주에게 약간의 돈을 주며 원하는 것을 사라고 마켓 안에 은주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은주는 초면엔 좀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빨갛게 상기된 채 마켓 안을 둘러보고 자신이 원하는 작품 앞에서 멈춰서는 수줍게 작가에게 이런저런 말을 물어보고 작가랑 대화를 나누고 이윽고 돈을 지불하고 작품을 샀다. 그 장면을 은주의 부모님이 지켜보며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방법이 정말 맞아요 원장님!!" 

"네 어머니, 제가 그랬잖아요!! 맞다니까요!!"

맞아요, 맞다니까요, 저는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어요. 나도 이렇게 외쳤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돼가는 12월의 첫날이었다. 12월 18일이면 곧 10년이 될 터였다.

나는 지치고 지쳤다. 벌써 55살이고 최선 이상을 다했다. 오늘 은퇴해도 전혀 이상한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터져 나온 아웃 풋에 또다시 온몸이 떨려 왔다.

은주를 앉혀놓고 쉐도잉( 영어 소리를 그 어떤 스크립트 없이, 연습 없이 바로 소리만 듣고 따라 하기)을 시켜봤다. 아이는 수줍어하더니 곧 줄줄줄 원어민의 빠른 소리를 바짝 쫓아가며 쉐도잉 했다.

"우와 은주 정말 영어 잘 한다. 이제부터 본격 스피킹을 해야 겠어!!"

"선생님 나 이미 영어로 말 잘하는데... 영화도 다 알아듣늗데.."

은주는 이미 영어로 말문이 트여있었다. 은주에게 말하기는 언제부터라고 꼭 꼬집어 말하기도 힘든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또한 은주의 영어 스피킹은 정형화되지 않은 자연스런 스피킹이었다. 쫑알 쫑알 또래 원어민 여학생 만큼이나 유창하고 자연스런 은주의 쉐도잉 음성을 들으니 격한 감정이 몰려왔다. 그 감정은 그 어떤 무쇠라도 녹일 만큼의 뜨거운 것이었다.



나만의 스피킹 프로그램, 연따 클래스를 꾸리다


 나는 다음날부터 3년 이상 학원을 다닌 아이들을 중심으로 쉐도잉을 시켜보고 녹음했다. 그리고 영어 스피킹, 나만의 스피킹 프로그램 "연따(연달아 따라 말하기) 원정대 1기를 꾸렸다. 원정대라고 지칭한 것은 연따 수업을 다른 건물로 이동해서 받아야 했었기 때문이다. 1기는 총 16명이었다. 엄마들에게 간담회를 공지했다. 엄마들도 뭔지 모를 기대감과 흥분을 갖고 간담회에 참석했다. 단 한 번도 영어 스피킹을 연습해 본 적도 없고 오직 듣기 읽기만 하던 우리 아이들, 원어민도 없고 스피킹 온라인 프로그램을 쓰지도 않는 동네의 작은 학원에서 영어의 가장 큰 핵심이고 본질인 영어 스피킹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쉐도잉을 따로 시키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 말을 받아 줄 대상이 없는 쉐도잉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이의 쉐도잉을 듣고 같이 맞받아주며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긴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만든 나만의 프로그램인 연따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몸은 지치고 좀비처럼 너덜너덜했지만 흥분으로 온몸에 다시 피가 돌고 번 아웃, 은퇴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져 버렸다. 

당시 블로그에 올렸던 연따 홍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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