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또 다른사람들, 영어학원 원장님들

영어학원 원장님들을 위한 세미나

블로그로 모여드는 원장님들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집콕하며 블로그를 하며 사는 동안 바깥세상은 조금씩 변해갔다. 일만 하고 있어서 현실이 바뀌고 있는 것을 처음엔 몰랐다. 어느 날 나의 블로그에 학부모가 아닌 새로운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다. 그들은 나를 이웃추가 하고 서로 이웃을 신청해왔다. 영어공부방이나 교습소 또는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님들이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때 세상은 세미나의 춘추전국시대 같은 때였다. 원장님들을 위한 크고 작은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 주제도 다양했다. 나도 중등관을 열기 전에 중등 커리큘럼에 대해 고민하다 그런 것에 관한 세미나가 있다길래 참여했다. 그곳에서 나를 알아보는 두 명의 원장님들을 만났다. 그 두 원장님은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던 분들이었다. 우주만큼 넓은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의외로 좁고 모두가 연결돼 있음을 알고 또 놀랐다. 그분들은 영어강사를 오래 했지만 강의식 영어 학습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아이들의 영어를 듣기부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말하고 읽게 되는 경험을 했지만 현실에서 자신들의 공부방에 적용하는 것은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과연, 이것이 엄마표로는 가능한데 학원에서도 가능할까?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나의 블로그의 글을 읽고 학원에 이 학습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고 나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같은 세미나 현장에서 만나게 됐던 것이다. 나도 그날 놀랐다. 세상에 나와보니 현실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내 블로그에는 원장님들뿐만 아니라 이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성인인데 자신을 상대로 3000시간 영어 소리를 채우는 젊은 주부도 댓글을 달았다. 그분을 통해서 그런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천안에서, 대전에서 부산에서 서울에서 새로운 방법을 현실에 적용하고픈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모여들고 댓글을 달았다. 원장님들은 댓글을 달았을 뿐 아니라 쪽지로 문자로 전화로 문의를 해왔고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들의 적극적은 대시에 나는 몹시 놀랐다. 현실이 바뀌고 판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은 그 새로운 판에 갈급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갈급함을 풀어주고 싶었다.









원장님은 저의 미래입니다.




2019년 봄에 나는 그들을 위해 세 차례의 세미나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원장님들이 모여들었다. 나의 세미나는 전에 없던 세미나였다. 당시 유행하던 원서 리딩에 관한 세미나가 아니었고 학습을 도와주는 프로그램 관련 세미나도 아니었다. 나의 세미나는 학습법 자체에 관한 세미나였다. 영어 사교육 시장의 트렌드가 돼 가고 있는 원서 읽기 위주의 교육과는 사뭇 달랐다. 원장님들의 의식 자체를 바꾸는 세미나였다. 원장님들은 타고나기를 가르치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아이들이 알 때까지 가르치고 가르치고 가르쳤지만 그것이 영어를 익히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들을 향해 나는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 제발 가르치지 말라고,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환경을 만들라고. 영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려면 역설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당장 중지하라고 했다. 집에서 가능한 학습법이 학원에서도 가능했다. 다만 그것을 엄마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은 원장님들이 이 방법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아야 했다. 안다는 것과 믿는 것이 얼마나 다른 지 나는 엄마들과 신규상담을 하면서 이미 절감하고 있었다. 약속한 3시간의 세미나 시간을 훌쩍 넘기고 쏟아지는 원장님들의 질문에 답하며 그들의 열망이 내게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세미나가 끝나고 뒤풀이 식사시간에 앞에서 식사하던 원장님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은 저의 미래예요!!"

누군가의 미래가 된 적이 있는가?

그날 밤, 부끄러워서 공개된 블로그에는 쓰지 못하고 다이어리에 저 문장을 또박또박 썼다.


세미나.jpg 첫 번째 세미나


세미나를 하면서도 학원은 또 학원대로 연일 바쁘게 돌아갔다. 새롭게 오픈한 중등관은 초등관과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지만 초등관 수업이 끝나고 나면 이미 녹초가 된 나는 중등관까지 가는 것에 엄청난 결심을 해야 했다. 중등관의 수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강사들과의 긴밀한 미팅을 해야 했고 중등관의 프로그램들을 결정해야 하고 신규 상담도 해야 했다. 한마디로 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양쪽을 오가며 완벽하게 두 학원을 운영하리라 결심했던 그것은 넌센스였다.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였다. 거기에 세미나라는 새로운 일까지 더해졌다. 일하다가 죽을 심산인지 모르겠으나 그해 가을에 나는 병원에 입원을 해서 수술을 해야 했다. 며칠 전부터 배가 묵직하고 아팠었다. 이러다 말겠지 싶어서 무시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약을 먹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일부러 이틀을 더 버티다가 10월 3일 공휴일을 맞기 전날까지 수업을 했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퇴근 전에 학원 청소까지 싹 마치고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게실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고 2주가 넘도록 입원해 있었다. 그 2주 동안은 리딩 선생님 두 명이 초등관 수업을 했다. 다행히 엄마들은 이해해주고 걱정해주었다. 수술을 하고 누워있으면서도 늘 마음은 학원에 있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뜻밖의 수술과 입원으로 하반기에는 세미나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해 2020년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 19라는 세계적 감염병이 터져서 나의 세미나는 1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2021년부터는 소수의 원장님들을 대상으로 창업지원 세미나를 시작했다.











원장님은

pioneer, 이자 pathfinder이십니다.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칭찬에 익숙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 내게 칭찬을 하면 저 말이 진심일까를 먼저 의심하는 사람인 편이다. 부끄럽지만 그런 못난 사람이다. 세미나를 하고 원장님들을 만나면서 많은 칭찬과 감사의 말을 들었다. 그 감사와 칭찬이 참 어색했다. 처음 공부방을 하면서 살림만 하던 내가 세상으로 나왔고 학원일만 하던 내가 세미나를 하면서 또 다른 세상으로 나왔다. 그 세상엔 경쟁과 알력이 있었다. 엄마들에게는 받지 않았던 상처와 쓰라림도 있었다. 그 세상에 나온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들이었다. 어떤 날은 세미나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수업만 하자고 생각했다. 내가 굳이 왜 이 세상에 나와서 오해를 사고 쓰라린 마음을 느껴야 하나, 싫었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세미나를 하고 원장님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살리고 원장님들을 살리는 이 학습법이 전국에 퍼지는 것을 상상하면 가슴이 뛰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지난여름 방학에 나와 인연을 맺은 원장님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리딩 캠프를 열었을 때는 정말 감동이 밀려왔다. 그들의 블로그에 차례차례 리딩 캠프를 알리는 공지가 올라올 때, 그리고 리딩 캠프의 정원이 마감되는 소식을 들을 때 내가 세미나를 해야 할 이유들이 거기에 있었다. 세미나는 개인적으로는 나의 외연을 넓혀주었고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길을 열어주는 교집합의 장이었다.

이제 "원장님은 pioneer 이자 pathfinder이십니다"라는 말을 부끄럼 없이 감사하게 받아 들일터다. 그리고 내가 찾은 그 길에 원장님들을 초대하고 같이 갈 거다. 그 길을 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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