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집합금지, 휴원,휴원, 휴원

코로나, 휴원, 장마

코로나 19, 그래도 지구는 돈다




2019년 12월 마지막 주에 나는 터키에 있었다.

일주일간의 휴가 동안의 여행이었는데 여행 중에 코로나 19라는 듣기에도 생소한 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바로 겨울방학 리딩 캠프가 시작될 참이었다. 이때는 코로나 19가 우리 인류를 어떻게 바꿀지 미처 몰랐다. 인류라고 지칭하는 것이 전혀 거창하지 않을 정도로 코로나 19는 인류를 바꿨고 전 지구적인 이 상황에서 누구도 제3자는 없었다. 처음엔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학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가 휴교를 하고 학원에는 집합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겨울방학 리딩 캠프는 진행할 수 있었지만 2월부터는 휴원을 해야 했다. 2020년, 1년 내내 휴원과 휴원을 거듭했다. 공식적인 집합 금지는 물론이고 근처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긴급 휴원을 했다. 살엄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수업을 했다. 엄마들도 두려움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학원은 마치 감염 확산의 온상지 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다. 우리 학원 종사자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방역을 했고 정부지침을 따르고 있었는데 그런 누명을 써야 했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이 모이는 공간이니 그럴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장기전이 되면서 아이들은 다시 학원으로 돌아왔다.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몇 개월이면 잠잠해지리라 기대했던 이 상황이 1년이 넘어가고 2년이 가까워지면서 그래도 지구는 돌듯이 일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방을 열던 날부터 방학이면 어김없이 했던 리딩 캠프도 2020년 여름방학엔 열 수 있을지 어쩔지 불확실했다. 엄마들의 격려와 나의 오기로 3주간의 리딩 캠프를 2주로 줄여가면서 겨우 겨우 열었다. 전년보다 참여인원을 20프로 정도 줄여야했지만 뭔가 화가 나고 억울해서 꼭 열고 싶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도 상황은 여전했다. 연일 보도되는 확진자의 소식들이 뉴스를 점령했다. 2020년은 불안과 황폐한 마음이 우리를 지배했다. 휴원이 반복되면서 위기에 적응해야 했다. 중등관은 줌으로 수업을 이어갔고 초등관은 숙제 봉투를 배포하면서 1주일에 두 번 아이들을 만났다. 어떤 방식으로든 수업을 이어나갔다.


숙제봉투.jpg 휴원중에 배포 한 숙제봉투








휴원으로 인해 얻은 뜻밖의 성과물




8차에 걸쳐서 휴원을 거듭했다. 숙제 봉투를 배포하면서 수업을 이어가던 어느 날, 멈추었던 스피킹 수업을 전화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스피킹은 늘 해야 느는 것인데 휴원 하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멈춰있을 수만은 없어서 고민 고민하는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방법도 아주 간단했다. 학원에 나와서 하던 것을 그 시간에 집에서 하는 것일 뿐, 형식에서는 달리 바뀐 건 없었다. 달라진 건 이 수업의 목격자가 생긴 것인데 그 목격자는 다름 아닌 엄마들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스피킹 수업시간에 집에서 선생님의 전화를 기다렸다가 전화로 쉐도잉을 하고 연따 스피킹을 했다. 이 광경의 목격자들, 엄마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연따 스피킹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엄마들을 모아서 간담회를 했고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이제 그토록 바라던 스피킹 수업을 하게 됐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었다. 엄마들은 음, 그렇군,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좋은 걸 한다는 건데 책을 읽는 건가? 이렇게 생각했었음을 알게 됐다. 엄마들은 직접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30분 동안 쉐도잉을 하고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놀랐고 감동했다. 아이들은 사전에 아무 준비도 없이 다른 일을 하다가 시간이 되자 걸려온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아이들은 전화기에 대고 줄줄줄 쉐도잉을 했다. 그리고는 영어로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했고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사전에 그 어떤 스크립트를 외우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과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엄마들이 상상했던 영어 스피킹은 영어유치원을 졸업해서 자연스러운 일상의 회화를 익혔거나 회화교재를 공부하며 상황에 맞는 문장을 바꿔가며 연습을 하거나, 원어민과의 클래스 수업이나 또는 전화로 하는 회화수업(그 수업도 패턴화 된 교재가 있다) 아니면 최근의 방법으로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스크립트를 반복적으로 외워서 주인공의 소리에 아이의 소리를 입히는 것 등등이다. 그 외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이런 연따 수업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던 수업으로 엄마들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선생님의 전화를 통해 수업을 하며 아이들의 수업내용을 다 녹음하게 해서 그 소리를 하나씩 다 들어보고는 나도 새삼 놀랐다. 우리 학원의 모든 인풋은 이 아웃풋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차별적인 소리 노출로 시작해서 엄청난 양의 책 읽기는 바로 이 순간의 스피킹을 위한 것이었다. 한글 해석 없이, 문법으로 인한 자가 검열 없이 툭 튀어나오는 자연스러운 영어 말하기, 바로 이 아웃풋을 위해 그동안의 인풋의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인데 이 생생한 증거가 계속되는 휴원으로 인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스피킹을 들으며 만족했고 나는 아이들의 스피킹을 녹음해서 들으며 만족하고 기뻤다. 휴원이 아니었으면 전화로는 스피킹 수업을 하지 않았을 거고 그랬다면 엄마들은 영원히 이 생생한 스피킹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휴원이 고맙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중등관 이전



2020년 여름은 지독하고도 길었던 최장의 장마 기록을 남겼다.

6월 12일부터 시작된 장마가 9월 10일까지, 잠시의 소강상태는 있었으나 거의 3개월간 비를 뿌렸다.

이 지독한 장마기간 동안 나는 초등관과 떨어져 있던 중등관을 이전했다. 초등관과 중등관은 걸어서 단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으나 그 심리적 거리는 그 이상이었고 시간이 지나도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때마침 초등관 옆의 학원이 철수를 하면서 나는 중등관을 바로 옆으로 가져올 결심을 했다. 인테리어를 하는 중에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비가 연속 10일이 넘게 오는 날도 있었고 공사는 진척이 없었다. 오랫동안 집중호우를 맞은 건물은 비를 그대로 머금은 채 마를 날이 없었다. 벽지를 바른 틈에 누수가 생기고 바닥에도 누수가 생겨서 그것이 말라야 공사를 계속할 수 있는데 비가 그치지 않으니 마르지를 않았다. 예정된 공사기간이 훌쩍 넘어가고 이전해서 수업을 시작하려고 했던 개강 날짜를 턱도 없이 넘겨버려야 했다. 공지는 이미 나갔고 아이들과 엄마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너무도 당연했다. 나는 이해를 바라며 구구절절한 사연의 안내문을 보내야만 했다. 그 구구절절한 안내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도대체 비가 그치지를 않았다. 엎친데 덮친다고 학원 설립법도 바뀐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미리 체크하지 못해서 구청과 학원을 오가며 서류를 바꿔야 했다. 관공서 일이 늘 그렇듯이 나는 급했지만 그들은 급하지 않았다. 속이 타들어가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서 다 때려치우고픈 심정으로, 어떤 날은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어찌어찌 날이 개고 공사를 마무리했다. 다행히 교육청 실사 검사도 잘 치르고 9월부터는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딱 1년 전의 상황인데 벌써 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고생스러운 기억을 벌써 잊다니 나도 참 어지간한 사람이다. 중등관을 바로 옆으로 옮기고 나니 훨씬 더 안정이 됐다. 더 이상 초등관 아이들이 스피킹 수업을 하러 그 먼길을 가지 않아도 됐고 예비중 1들의 수업도 바로 옆에서 진행할 수 있어서 엄마들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했다. 그러니 나도 좋았다. 초등관과 중등관이 나란히 하게 되면서 우리 학원은 더욱더 시너지를 내게 됐다. 물론, 나의 일은 크게 줄지는 않았다. 나는 초등관 수업을 하면서도 복도를 날아다니며 중등관 수업을 세밀하게 볼 수 있게 됐는데 일이 줄어들 리가 없다. 그래도 좋다. 나는 오늘도 복도를 날아다닌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아직도 세계는 코로나 19의 상황 아래에 있다. 몇 달이면 끝날줄 알았는데 벌써 2년을 지나가고 있고 더 심각한 것은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니 끝이 날 지도 분명하지 않다. 다행히도 2021년 올해는 아직은 휴원 없이 운영 중인데 살엄음판을 걷는 기분은 여전하다. 학교의 같은 학년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오늘 등원하지 못한다는 문자를 받으면 깜짝깜짝 놀라고 심장이 서늘해진다. 그래도 모든 일에는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휴원 하지 않았으면 얻지 못할 성과물들도 얻게 됐다. 사람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생길 때도 있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그런 상황에 처할 때가 살다 보면 있다. 그럴 때는 누구 탓을 하기보다는 그 와중에 뭘 할 수 있을지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비가 오고 폭풍우가 치면 잠시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버티며 기다려야 할 시기도 있다. 버티면서 궁리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주어 없는 이문장에 주어를 넣어서 적어본다.

내가 끝낼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너는 나를 끝내지 못한다. 끝내도 내가, 우리가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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