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10월 31일 밤에 나는 은희 씨를 만난다.
그녀,
57세의 동화작가 은희 씨 얘기를 해보고 싶다.
은희 씨는 동화작가로 문단에 데뷔를 했지만
생업 때문에 맘껏 글을 쓰지 못했다.
남편의 사업은 늘 그타령이어서 생활비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은희 씨는 초등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해서 살림을 꾸려 나갔다.
은희 씨의 글쓰기 수업은 동네에서 제법 유명해서 수업이 늘 많았다.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수업을 했다.
아이들과의 글쓰기 수업은 힘들었지만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
살아갈 돈을 벌게 해주는 일이니 고맙기도 했다.
은희 씨는 그렇게 주말도 없이 10년을 일했다. 일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돈을 벌며 10년을 살았다. 아이들은 커갔지만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아지기는커녕 부도 지경에 이른 남편의 사업 때문에 그나마 힘들게 마련한 32평 아파트가 경매로 날아갔다. 자기의 글을 쓰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가며 살아가던 은희 씨는 아파트가 경매로 날아가던 날, 툭 하고 맘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더는 이렇게 살기 싫었다. 이 삶은 허무하고 슬픈 삶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글쓰기 수업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이제 중학교 3학년, 1학년인 두 아이를 생각하면 먹먹했지만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더는 생업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의 수업을 모두 정리했다. 은희 씨는 이제부터 자신의 글만 쓰리라 결심했고 자신의 글을 써서 먹고 살리라 결심했다. 너는 이기적인 여자야, 어떻게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지? 다른 사람들도 먹고살려고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거야, 자식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비난과 매서운 눈초리는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은희 씨는 아이들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분리하면서 맘이 아파 울었다. 안락하고 따뜻한 집을 만들어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희망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목구멍이 아프도록 메어왔다. 미안하다, 얘들아, 엄마는 이제 엄마 인생을 살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야, 미안해 미안해. 잠든 아이들을 보며 울면서 용서를 구했었다. 그리고 은희 씨는 자신만의 글을 썼다. 그토록 쓰고 싶던 동화를 썼다. 은희 씨는 동화를 모두 17권 출간했다. 지금 은희 씨는 글도 쓰고 강연도 하고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성인들의 글쓰기 모임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은희 씨는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서 그 일로 밥을 먹고 산다. 아이들도 다 컸고 자기 살 궁리는 스스로 하는 성인이 됐다. 여전히 부자는 아니지만 밥은 먹고 산다.
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은희 씨를 만났다. 은희 씨의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나 같은 여자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때 나는 나의 두 아이를 위해서 살아가는 어미였다. 내 삶은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일했고 은희 씨에 비하면 이미 충분한 돈이 있었는데도 더 돈을 벌려고 노력했다. 무슨 일을 하던 그건 상관없었다. 많이 벌어서 다 자식에게 주고 싶었다. 이런 삶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은희 씨의 이야기를 들은 그날 밤 나는 내 삶이 부끄럽고 슬펐다. 그녀의 자신의 삶에 대한 순수한 욕망이 부러웠다. 물러서지 않는 그녀의 용감함이 뭉클하고 부러웠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로 타협하지 않는 그녀에겐 빛이 났다. 그 빛은 내게는 없는 빛이었다. 나는 좋은 게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그건 비겁한 자기 합리다. 자신의 원함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드러내고 그 길을 가는 은희 씨를 보며 나도 때가 되면 나만의 인생을 살리라 결심했다. 누구도 못하는 그 길을 먼저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녀, 은희 씨.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이기적인 삶인가?
나는 오랫동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라도 살아진다. 살았다기보다는 살아진다.
결혼 전의 삶은 말하고 싶지 않다.
되는대로 살았고 하루하루 살았다.
결혼을 하고 안정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음이 느껴졌다.
먼지처럼 떠돌던 삶이 어딘가에 착 내려앉아 처음으로 둥지를 틀었다.
그 후로 15년 동안 두 아이를 키우고 남편의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그에 따른 집안일을 하며 살았다.
내가 원하는 삶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락하고 평온했다. 안락과 평온, 그게 좋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배은망덕하게도 안락과 평온이 심드렁해졌다.
평온한 삶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자식을 키워내고 한 가정을 지키는 시간들은 힘들고 행복하고 뿌듯한 세월이었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일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일과는 다르다.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은 독립한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뭉텅이의 시간들이 내게 돌아왔다.
한참 육아에 시달릴 때 나의 시간이란 없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다시 나 혼자의 시간을 갖게 된 이 현실이 놀랍고 선물 같았다. 되돌아온 나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 시간을 느껴보려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좋지 않았다. 되돌아온 그 시간들은 지루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어졌다. 새로운 삶, 그것이 어떤 삶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이런 맥 빠진 삶이 싫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취미를 해봤고 운동도 해봤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으나 그 어느 것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는 게 지루했다. 나의 일상에서 기대할 것이 없었다. 15년을 넘게 가족만을 위해 살았는데 그 끝이 이런 것이라니 두렵고 억울했다. 무엇이던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알았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육아로 살림으로 아무리 바쁘고 힘들었어도 그때 알았어야 했다. 나에 대해 알았어야 했고 나에게 질문했어야 했다. 식구들을 위해서 15년이나 살았는데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크고 나만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누구의 잘못인가? 식구들, 그들의 잘못인가? 너희들을 위해 내 인생을 갈아 넣은 시간이었으니 돌려달라고 할 건가?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잘못이 있다면 나를 팽개쳐둔 나 자신에게 있었다. 57세의 은희 씨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나는 나를 몰랐고 내가 원하는 것도 몰랐다. 은희 씨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까칠하고 이기적인 여자라고 비난을 들어야 했고 기꺼이 그것을 감수했다. 난 비난이 싫어서, 나는 갈등이 싫어서 좋은 게 좋다를 선택했다. 덕분에 착한 부인, 희생적인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아이는 크고 남편도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는데 희생적인 엄마, 착한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잡고 뭘 할 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살았으면 세상은 형편없었을 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좋은 게 좋은 거다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에,
은희 씨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은 이토록 멋진 거다.
그동안의 삶을 굳이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 장이 바뀌었다.
새로운 장, 새로운 시간들이다.
나를 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나의 욕망을 드러내며 그 욕망을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그렇게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