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너는 어느 관념에서 왔니?
일하는 나의 세계에 너 같은 인간이 처음은 아니지만 한숨이 나오네.
난 말야 어느 순간부터는 일만 하고 살았어.
일하는 세상에는 평화가 있어.
그냥 내 일만 하면 됐기 때문이지
그 세상은 정직한 세상이야.
전에는 자본주의를 정말 싫어했어. 증오했지.
왜 싫어했는지 시작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레미제라블의 판틴이 자신의 딸을 맡겨놓은 악랄한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낼 돈을 벌면서 이빨이 빠지고 몰골이 흉흉해지며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볼 때, 산업혁명 당시에는 두 살짜리도 공장 노동자로 착취당하기도 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 내 눈을 의심했어.
인간보다 생산되는 물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한컷으로 보여줄 때 그 처참함에 분노가 생겼어.
처음 공장에 들어가서 봤던 그 광경도 잊을 수가 없다.
생전 처음 컨베이어 벨트를 보고 알 수 없는 무서움과 분노로 목구멍에 뜨거운 눈물이 끓어오르는 걸 꿀꺽 삼켰어. 끝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는 거대한 괴물이고 끝없는 착취의 레일이었지. 노동자들은 감정 없는 얼굴로 자신이 맡은 공정에 로봇처럼 세라믹과 콘덴서를 꽂았어.
당시에 노동자들은 분명히 착취당했고 억울했어.
때로 울분을 삼켜야 했지만 공장의 어린 후배들과 저녁이면 술도 한잔씩 마셨고
내 손으로 용돈도 벌면서 그냥저냥 세월을 보내며 공장 노동자로 살았었어.
그 공장에 2년 정도 다닌 것 같아.
다니는 동안 일은 잘했어. 아주 단순한 노동이었고 나는 손이 빨랐거든.
공장의 어린 친구들과 제법 잘 어울리며 계획 없이 목표 없이 살았던 것 같아.
어떻게 그 공장을 나오게 됐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아.
아주 오래전 일이야.
세상이 어떤지 모르겠어 이제는.
모르는 것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는 것도 그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야.
그냥 두 주먹 불끈 쥐고 내 감각으로만 믿고 돌파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
나는 이제 진실 규명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멀어졌다.
각자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고 외치는데 내가 알 방법이 없어서 말야.
내가 믿고 있는 그것을 끊임없이 의심해 봐야 하는데 팩트와 팩트체크, 가짜 뉴스 등등에 지쳤어.
확증편향과 알고리즘도 더욱더 나를 진실을 운운하는 장에서 멀어지는 것에 한몫했지.
서로 자기네 말이 진실 이래. 참 가증스러워서 말야.
너의 진실이 나의 진실이 될 수 없는 세상이야
너의 말을 모두 듣고 참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야
자기네 말만 진실이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스피커들
지들이 얼마나 역겨운 지 모를 거야.
할 말은 많지만 그냥 꾸역꾸역 목안으로 욱여넣는다.
그냥 한마디만 하자면,
너희들은 니들이 정의롭다고 외치는데 말이야
2021년 12월, 지금 이 순간에
너희들이 제일 구리고 제일 후져
내가 이렇게 후진 너희들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야.
내 두다리를 땅에 딱 딛고 살고 있기때문이지.
거짓없는 나의 역사 때문이야.
나는
이 무서운 세상에 작은 나의 좌판을 깔고 내 것을 팔기 시작했어.
내 것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내 물건을 팔았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어.
거기엔 나의 물건과 그들의 필요만 있었어.
건조하지만 진실된 세상이고 핵심만 있는 세상이야.
누구도 소외받지 않았고 누구도 착취하지 않았어.
불공정도 없었고 말이야.
나도 행복했고 그들도 행복했어.
나는 편법 없는 이 자본주의가 좋았어.
이건 또 하나의 세계이고 나의 역사야.
너희들의 알 수 없는 진실보다 나의 역사가 내게는 더 중요한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니?
어쩌면 마르크스의 말이 결국 맞을지 몰라.
인간의 계급이 그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겠지.
난 나의 계급을 이제 정확히 안다.
그래서 너희들은 나를 속일 수 없어.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아는 사람을 누가 속일 수 있겠어.
계급을, 너의 존재를 모르는 것은 바로 너야.
너는 어디에 서있니?
너의 존재와 너의 정신과 너의 행동이
삼위일체가 아닌 각각 분리돼서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니가 끊임없이 선동당하는 이유기도 해.
나는 니가 어디 서 있는 줄을 알겠는데 너만 모르다니.
측은하고 안쓰러워.
제발 너 자신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나에겐 아무도 믿지 않을 자유가 있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난 그 권리를 위해서 싸울 거야.
물론 싸움 따위 관심도 없지만,
니들이 원한다면 기어코 내 권리를 위해서 싸워줄게.
너희들은 나를 절대 못이겨.
덤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