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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과 2200만 원의 돈

2022년 글을 쓰려는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



 1929년에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의 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2022년에 이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돈.

한국 사정을 생각해서 이렇게 고쳐본다.

자기만의 방과 2200만 원의 돈.





일반 평민이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언제부터일까.




 일반 평민이라는 말은 간단하게 말하면 귀족을 뺀 계급, 그중에서도 그때는 남자를 의미했다.

프랑스 파리의 문서보관실에 보관돼 있는 한 문서에 따르면 18세기 파리 사람들 가운데 침대 하나를 오롯이 혼자서 쓴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체 어린아이들 가운데 요람이나 아기 침대에 누운 아이의 비율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았고 전혀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의 경우 다른 하인들과 침대를 같이 썼다.  당시의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은 쉽게 발견된다. 평범한 평민의 가정의 경우 방한칸에서 모든 가족이 기거하는 모습은 너무나 당연스럽다. 우리나라 대하소설 토지를 읽어보면 그 모습은 더욱더 뚜렷이 나타난다. 현대라고 딱히 다를 게 없다.

여성의 경우 어떠한가? 24평에 살던 가족이 저축을 늘려서 운 좋게도(요즘 말로는 영혼을 끌어모아) 38평으로 혹은, 45평으로 이사할 경우 자녀들의 방과 안방이 결정되고 방하나가 남게 되면, 대부분 그 방은 서재로 활용되며 그 방의 주인은 남편, 가장일 경우가 많다. 여성의 공간은 어디인가? 안방인가? 부엌인가? 거실인가? 그래도 생활의 여유가 있다는 중산층의 경우가 이러한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어떠할지 생각해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만해도 주방 옆, 다이닝 룸의 공간의 식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탁 트인 거실 창으로 멀리 산이 보이는 이 공간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물을 마시러 식구들이 나오거나 비록 이제는 성인이지만 아이들이 뭔가 필요해서 냉장고 앞을 들락거릴 때, 주말에 남편이 거실의 티브이를 켜고 테니스를 볼 때, 대단한 작가는 아니라도 나의 집중력이 떨어짐은 당연하다. 주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주말 낮이면 짐을 싸들고 카페로 향하는 이유이다.






1년에 2200만 원의 돈


 (남성을 포함해서) 누군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파산 직전에 글을 써서 인생이 바뀐 경우라고 하는데 그녀의 모든 사정까지는 내가   없지만 아이가 있고 파산했으며 혼자된 여성의 경우, 그녀가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식량과 아이를 양육할 돈과  곳이 필요하다. 돈을 벌기 급급 했을 그녀가 카페에서 오직 글만   있었던 것은 그동안 벌어놓은 최소한의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어느 한 달을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씩 카페에서 글을 썼었다.

출근 전 오전에 카페에 갔었고, 퇴근하고 저녁에 카페에 갔었다. 오전엔 커피를 마셨고 저녁엔 샌드위치와 음료를 마셨다. 하루에 9500원에서 15000원 사이의 돈이 들었다. 카페에서 글을 쓰려면 이 정도의 돈은 당연히 든다. 네 식구가 사는 가정에서 나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이 얼마나 필요한 지는 계산해보지는 않았다. 2200만 원의 돈은 홀로 의식주를 해결한다고 했을 때 아주 아주 최소한으로 잡은 돈이다. 더 들면 더 들었지 더 적게 들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만의 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시간


 2022년에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쩌면 자기만의 방이나 돈보다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다. 여성이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나는  안다. 내가  아는 환경, 결혼했고  아이를 키우고 전업이기도 했다가 지금은 일하는 여성으로서 말하자면 나는 나의  아이가 중학생 정도 되었을  겨우 나만의 시간을 갖게   있었다. 물론 내가  (?)하거나 현명한 여성이었으면  일찍  시간을 갖게 됐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냥 평범한 여성으로 남편은 돈을 벌고 집안일은 내가 다 했다. 연년생으로 낳은  아이의 육아 역시도 혼자 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일을 시작했을 때도 처음엔 일과 집안일을 혼자 했다. 남편이 특히나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것은 나의 일이었다. 학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출근은  늦었지만 원장이자 강사였으므로  일이 정말 많았다. 오전에 집안일을 끝내고 중학생인  아이가 돌아오면 먹을 저녁을 준비해야 했고 허겁지겁 출근해서 학원일을 했으며 퇴근  돌아와서는 녹초가  몸으로 남은 집안일을 했다. 물론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집안일은 내 몫이었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모두 나에게 속한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조금씩 남편이 집안일을 나눠서 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손을 벗어나자 비로소 나는  시간을 갖게 됐다.

자기만의 공간이 없어도 부엌 구석 퉁이에서 글을  수는 있다. 돈이 없으면 최소한의 돈으로 버티며 도서관이나 어디에서든 공짜로 책을 읽고  영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만의 시간이 없으면 조용히 자신에게 침잠해가며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 이것이 글을   있는  번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직장인이나 주부들이  그렇게나 새벽에 일어나려고 미라클 모닝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닐는지.





 2022년은 1929년 버지니아 울프의 시간으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나온 시간이다.

여전히 그때와 같은 상황인 것도 있고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 것도 있다.

자기만의 방과 2200만 원의 돈이 있는 한 여성이 자기만의 시간도 갖게 됐는데 이 여성이 자신을 버려둔 채 자신 외의 곳에서 그 소중한 시간을 쓰고 있을 때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없다.

세상과는 상관없다. 우선 자신을 만나야 하고 자신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


설 연휴가 지나고 본격 2022년이 시작되는 2월이다. 새해에 아직 뭔가를 정하지 못한 여성들이 있다면 이 글이 가볍게 뭔가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시간과 공간과 돈이 모두 갖추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이 글을 읽고 유튜브 채널을 끄고 알고리즘을 차단하고 벌떡 일어나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식탁의  귀퉁이를 치우고 그곳에  권의 책을 놓는다면 이미 당신은 시작  셈이다.

첫 시작을 한 당신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 hannaholing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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