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때가 있다.
가끔 그때를 생각해본다.
그때라고 쓰려니 갑자기 멍해진다.
그래 누구에게나 그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모두 거리에 있었다.
등에 등이 밀리고 광장까지 밀려갔다.
나는 무서워서 거기에 주저앉았었다.
나는 광장이 정말 무서웠다.
난폭하고 경멸이 오가는 광장이 진저리 나게 싫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를 끓어 올려야 하는 그곳에서
내 맘 깊은 곳에는 분노가 없었다.
광장에서는 무서워하면 안 됐고 분노해야 했다.
나는 분노가 없었지만 너무 외로워서 그곳에 밍기적거리며 남아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우리가 정녕 우리였던가?
우리는 우리였던 적이 있었나?
그때 우리는 각자의 결핍으로 그곳에 모였었다.
그때, 맨 앞에서 외치던 그녀 주희
나의 친구 주희 얘기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늘 웃는 얼굴의 주희는
나비처럼 가볍게 광장을 날아다녔다.
그녀는 분명 늘 웃고 있었는데 가슴 깊은 곳 어디에 그런 분노가 감추어져 있는지 신기했다.
그녀는 또한 오랫동안 피 속에 흐르고 있는 넘치는 측은지심의 dna를 가지고 있었다.
그 측은지심의 dna는 사실 굉장히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이었는데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 dna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미친놈에게 끌리도록 만들었다.
그 미친놈은 술을 안 먹으면 착한 놈이었고 술을 먹으면 괴물이 되는 놈이었다.
이 글을 쓰자니 또다시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건가.
그녀 dna의 선택인 것을.
착한 것이 악한 거야
주희는 착한 괴물인 그놈과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고 파란만장 인생을 살았다.
글로 쓰자면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흔한 말이 주희의 이야기였다.
구구절절하게 말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결혼 생활은 당신이 생각하는 끔찍함, 그것에 곱하기 2 정도 하면 된다.
그래도 주희는 끔찍한 결혼생활 중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부단히 노력했다. 쓰레기와 산다고 자기도 쓰레기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성과 측은지심의 dna를 모두 소진해버리고 나서 그놈과 이혼했다.
이혼 법정에서 돌아서서 나오던 그날 주희는 착한 괴물의 뒷모습이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하마터면 다시 달려가 손을 잡을뻔했다. 그래도 그를 사랑했었던 그녀였다. 그 말을 들을 때 나도 눈물이 났고 마음이 아팠다.
이 개떡 같은 세상에서 그 착한 괴물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그녀는 온 혈관 곳곳을 흐르던 나쁜 dna를 모두 소진하고 자유로운 여자가 됐다.
비로소 어떤 것에도 억압되지 않은 자신을 찾았다.
몇 시간이고 한강변에 앉아서 흐르는 한강을 보며 앉아 있었다.
강물처럼 자유롭게 굽이치고 흘러서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을 알고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울었다.
새 이름
우리는 태어나서 부모에게 dna와 함께 이름을 받는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이름을 닮아간다.
이제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진 주희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됐지만 자신이 만든 이름을 선물하고 싶었다.
주희는 자기에게 자신이 만든 새 이름을 선물했다.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은 의식으로 새 이름을 받고 새 삶을 시작했다.
그녀는 그를 만난 광장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가장 치열한 싸움터에서 그녀는 더욱더 빛이 났었다.
이제 그녀의 가장 치열한 삶의 터전은 그녀 자신의 인생의 한가운데가 됐다.
비로소 찾은 자기의 중심에서 그녀는 지금 가볍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