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닳아져 가는 그 사장님

지난여름, 보도블록 위에 매미의 허물들이 뒹굴었다.

멈칫, 매미인 줄 알고 밟지 않으려다 기우뚱거렸다.

매미의 허물들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지거나 바람에 훅 날려가 버렸다. 

바스러지거나 날려가는 얇은 그 허물들, 아이들은 장난처럼 그 허물을 들고 와서 내 앞에 내밀곤 했다. 

진짜 매미인 줄 알고 깜짝 놀라면 아이들은 재미있어서 깔깔깔 웃었다.






몹시 쇠락해 보이는 한 남자가 있다.

흐릿하고 아득해 보이는 그 남자, 컴퓨터 사장님.

매미의 허물처럼 바스러질 것 같은 그 사장님을 14년 전에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막 공부방을 시작했는데 창업 초기에 여러 대의 컴퓨터가 필요했고 컴퓨터를 구입하느라 사장님을 처음 만났다. 14년 전만 해도 동네마다 컴퓨터를 조립해서 파는 컴퓨터 가게가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고 동네 컴퓨터 가게를 이용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핸드폰과 태블릿이 개인용 pc를 대신해서 손에 손에 쥐어지며 동네 컴퓨터 가게들은 눈에 띄게 사라져 갔다. 사장님의 가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게 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사장님은 가게 문을 닫고 컴퓨터 관련 조그만 회사에 파트타임으로 취업을 했다. 월수금은 회사를 나가고 남은 요일엔 여전히 컴퓨터를 조립해서 팔거나 컴퓨터 수리일을 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사장님은 풍채가 좋지는 않았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말라갔다.14년 동안 1년에 서너 차례 사장님을 만났다.

늘 비슷한 점퍼와 닳고 닳은 랜드로바, 한결같은 사장님의 차림새였다.







여름이 끝나고 새 학기를 맞아 컴퓨터를 몇 대 마련하려고 사장님을 찾았다. 몇 달 만에 만난 사장님은 그 사이 좀 더 마른 듯이 보였다.

"이번 학기, 드디어 둘째의 마지막 등록금을 냈네요"

라고 말하는 사장님의 얼굴에 자랑스러움과 고단함이 같이 묻어났다.

"우리 둘째도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예요" 나도 대답했다.







사장님도 나도, 우리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나는 평범한 사장님의 그 한마디에 울컥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단지 두 아이를 키워냈다는 사실 앞에서 존경심이 느껴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웠다.대학까지 모두 마치도록 키워냈으니 이제 자신의 밥벌이는 자신이 하겠지.

물론 더 주고 싶지만 가진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더는 줄 게 없다. 이제 허물만 남았다.

바스락거리며 금방이라도 부서실 것 같은 허물만 남았다.


4B 연필로 그려진 초상화가 세월이 지나며 조금씩 연필 가루가 사라져 희미해지듯이 사장님의 얼굴이 바래진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얼굴의 윤곽이 허물어지고 봄, 가을 늘 비슷한 잠바 속의 사장님은 점점 더 말라가서  마치 매미 허물처럼 바스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은 바스러져 껍질만 남고,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다니는 둘째는 알맹이가 되어 물이 오르고 창창해간다.  사장님과 나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이렇다 할 내 이름 석자를 남기지 못하고 바스러져간다. 그래도 슬프지 않다. 창창하게 남아있는, 키워낸 자식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이름 석자이고 우리들의 역사이고 우리들의 서사다.

그래서 오늘도 사장님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기꺼이 바스러지고 껍질이 된다.

기꺼이 닳고 닳아 간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매거진의 이전글 다리의 한가운데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