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리얼리티쇼 '러브온 더스펙트럼', 2019
얼마 전 우연히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를 둔 가족이 나온 것을 봤다. 아무래도 주변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없다 보니 저절로 눈길이 갔고, 금쪽이와 엄마가 마주하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오은영 박사는 자폐 뒤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이유는 발현되는 자폐 증상의 수준이 천차만별이고, 초기 증상이 심각하더라도 사회화와 교육을 통해 소위 '정상'에 가깝도록 개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러다 얼마 후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목록을 구경하는데, 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흘깃 지나칠 땐 여느 싱글들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예고편만 볼 생각으로 클릭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자페 스펙트럼을 가진 싱글과 커플들을 영상으로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놀라웠던 것은 기존에 인식하고 있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일상 대화나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출연진들은 비록 일부 불편함이 있다 하더라도 소위 정상인(normal people)이라 말하는 일반 사람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제작진이 한 출연진에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폐증은 신경학적 장애일 뿐, 아스퍼거나 자폐증이 있으면 남들과 다르게 세상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름 또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어떻게 데이트 상대를 만나고 반려자를 찾을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상대의 감정을 잘 해석하지 못하고 사회성이 조금 낮을 뿐 그들 역시 반려자이자 사랑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이 프로그램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 중 하나는 정상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말해주는 사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한 출연자가 말한 사랑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 놀라웠다.
“사랑이란, 자기도 생각하지 못한 미친 짓을 하게 만들고 이상하게 굴게 만드는 것.
소통과 정직함 그리고 타협이 필요한 것.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는 것.
그리고 단지 지루하다는 이유로 떠나지 않는 것.
또 상대를 지지해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모른척하지 않는 것”
사랑을 이렇게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들은 사랑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누구보다 사랑에 진심이었다.
문득 몇 년 전 읽었던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2018)'이 떠올랐다.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저자가 변호사답게 본인의 경험을 포함하여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비합리적인 사회의 단면들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작가가 독자들을 위해 이해하기 쉽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사회의 이면을 이해하기 위해 잠깐 멈춰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던 무거운 책이었다.
당시 세상이 구분해 놓은 '정상'이라는 기준에 대해 의문이 들었었다. '정상'이라는 기준은 아마도 자칭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이 구분 지어 놓았을 텐데, 그 기준이 과연 양쪽 또는 모든 사람들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인지에 대해 말이다. 장애가 잘못되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작가 또한 언급해놓았듯이, 그들 스스로를 '잘못된 삶'이라 생각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불리한 사회임은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총 5화라는 짧지 않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을 보며 결론 내린 감상평은 이렇다.
비록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고, 또한 지켜야 할 본인만의 소신과 가치관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는 그들이야 말로 현대에 몇 안 되는 진정으로 건강하고 독립적인 시민이자 어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