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지금까지의 일상은 너무나 편하다. 마치 학창 시절 겨울방학 때의 감정과 느낌들이 떠오른다. 출근 때문에 일찍 일어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잠은 자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대에 기상을 하며 최소한으로 해야 할 루틴을 거친 후 미뤘던 집안일도 하고 OTT도 보고 낮잠도 자고 투자 공부도 한다.
무엇보다 와이프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바쁘단 이유로 미룬 한 대화를 제약 없이 오랜 시간 나눌 수 있었고 지금까지의 우리와 앞으로의 우리를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조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전전 회사의 경쟁사에 면접을 봤고 운 좋게 최종까지 올라갔지만 끝내 탈락을 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니 갑자기 사고가 바뀌었다. 이젠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최소 1개월 넘게는 무직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내 커리어는 둘째치고 우선 생활부터 문제가 된다. 어떻게든 외식, 배달, 약속, 그 외 문화비용을 줄여도 최소한 지출해야 할 생활비가 적지 않을뿐더러 투자까지 감안했을 때 불안이 확 엄습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요즘엔 양가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더욱 투자 공부에 열임 하고 있고(학창 시절에 준하는 수준) 끊임없이 채용 공고를 살피는데 하루가 다르게 정말로 바쁘다(ㅋㅋㅋ) 취업준비생 시절과는 다른 혹은 더욱 밀도가 있는 불안과 책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어제는 장인장모님과 식사를 같이 했다. 평소 같았으면 먼저 말을 걸고 재밌게 자리를 이끌어가는데
아무쪼록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내가 직장이 없으니 위축되어서 밥만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자 장인어른께서 한 말씀을 하셨다.
너무 감동했지만 비장한 표정과 말투로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다. 지금 순간만 보면 보잘것없고 막막한 일상의 연속이다. 하지만 인생은 순간이 아니다. 수많은 순간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방향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잠시 쉬고 있는 하나의 순간일 뿐이다. 그리고 더 나은 순간들을 위해 잠시 멈춰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을 소중하게 잘 보내며, 이런 나를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최선을 다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