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논리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나는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의 관료주의 문화와 수직적인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이고, 냉담한 학교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장이라는 관리자 한 명에 따라 학교의 분위기가 좌지우지되는 절대권력의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내 기준에 직업으로서 교사는 그리 좋은 직업이 아니다. 그냥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을 가르친 지 어느덧 18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교사로 지내며, 지금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한 가지 있다.
어머니는 내가 퇴근한 저녁, 가끔 전화로 물어보셨다.
"우리 아들, 점심때 학교에서 뭐 먹었어?" 난 그 물음에 단 한 번도 대답하지 못했다. 교육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신규교사 때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제법 경력교사인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퇴근한 저녁에 혼자서
'오늘 급식에 뭐 나왔었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교직 경력이 15년을 넘어 20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와 같은 초등교사 아내에게
"여보, 급식에 뭐 나왔어?"
라고 물으면 멀뚱멀뚱 서로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초등교사의 비애...
초등교사에게 급식시간은 전쟁이다. 급식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 뛰어다니는 아이, 급식판을 떨어뜨리는 아이와 그 급식판을 뒤집어 쓴 아이, 국을 엎지르는 아이, 옷에 반찬을 잔뜩 뭍혀 울고 있는 아이, 밥 먹다가 싸우는 아이, 의자에서 넘어지는 아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그 짧은 급식시간에 일어난다.
한 번 상상해 보자. 30명의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밥을 먹는다면 어떨까? 밥 먹는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날 일이 여러 번이다. 급식실에는 우리반 아이들 뿐 아니라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동시에 밥을 먹는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어쩌다가 '짜요짜요'라도 나오는 날이면 그날 점심은 포기해야 한다. 분명히
"선생님, 이거 따주세요."
라며 긴 줄을 설 것이다. 아내와 내가 급식시간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공포의 '짜요짜요'
오늘 급식시간에 떡국이 나왔다. 내가 오늘 메뉴를 기억하는 것은 떡국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마음 먹고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왜 밥을 사진 찍어요?"
옆에 앉은 우리반 여학생이 신기한 듯 물어보았다.
"그냥 기억하고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를 보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떡국에 날렸다.
오늘 나온 급식 떡국- 오늘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지 모른다.
"매일 점심 메뉴 뭐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좋아요? 영양교사가 균형있게 알아서 탁탁 해주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러한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직업에는 고충이 있다.
그래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나는 단지....
오늘 먹은 점심메뉴를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조금의 여유를 스스로 가지고 싶을 뿐이다.
과연 나는 언제쯤 급식 메뉴를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하겠지....?
예쁜 우리반 아이들의 급식 모습
*글 포스팅 이후... 정말 가볍게 쓴 글인데 3일만에 15만의 조회수를 보이고, 많은 분들이 공감과 댓글을 달아주셔서 놀랐습니다. 많은 관심에 감사합니다. 다만... 인신공격성의 댓글은 삭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