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차로 이동하는 중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친하게 지내는 옆집 강남부부의 여자분이었다.
"언니, 이번달 가스비 얼마 나왔어요? 저희 집 65만원이 넘게 나왔어요. 아기가 있어서 난방을 안할 수도 없고 고민이에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슬슬 우리집 난방비 걱정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에 놓인 가스비 고지서부터 확인하였다.
헉! 472,000원! 한 달 가스비 50만원에 가까운 고지서를 보며 우습게도 '옆집보다 적게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하는 착각도 잠시 들었다.
이번달 가스비, 다음 달은 더 나올 지도...
제주살이 난방비 폭탄의 시기가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12, 1, 2월은 난방비 폭탄의 시기다. 제주도는 제주시 도심의 아주 일부 아파트만 빼고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제주도민들은 대부분 등유 보일러나 LPG로 난방을 한다. 등유 보일러는 시골의 구옥이나 단독주택에서 많이 쓰고 LPG는 타운하우스나 빌라에서 흔하게 쓴다. 기름 보일러가 기름값이 많이 드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넘어가고, LPG로 난방을 하면 어떨까? 우리가 흔히 쓰는 부탄가스가 LPG인데 이것으로 집안 전체를 난방하면 가스비가 엄청나다. 등유 보일러나 LPG 보일러나 난방비 비싸기는 똑같다.
제주에서 네 번의 겨울을 겪고 있다. 그동안 난방비를 아끼는 노하우가 생겼는데 아마도 옆집과 20만원이 차이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우리집은 캠핑장비를 적극 활용한다. 팬히터, 등유난로, 써큘레이터를 난방 보조기구로 활용한다. 특히 오토캠핑장에서 쓰는 '신일 팬히터'는 겨울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아이템이다. 매년 겨울철이면 품귀현상이 벌어지는 이 팬히터는 캠핑장 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빛을 발한다. 등유를 이용해 열을 내고 전기로 팬을 돌려 열을 순환시키는 방식은 금방 실내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며 열효율이 높다. 기름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아 아는 사람은 이미 아파트에서도 쓴다. 등유 한 통을 받으면 이만 원 내외인데 한 통이면 2주 정도 쓸 수 있어 경제적이다.
그 유명한 신일 팬히터- 이거 하나면 거실 난방은 거뜬하다.
'파세코 등유난로'도 캠핑족에게는 인기가 좋은 아이템이다. 팬히터에 비해 연비는 좋지 않지만 금방 공기를 데우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밤에 등유난로를 켜놓으면 실내에서 '불멍'의 느낌이 나는 감성적인 면이 있다. 등유난로 위에 쿠킹호일로 싼 고구마를 올려놓으면 금방 고구마가 익어 쏠쏠한 재미가 있다. 등유난로를 켜면 써큘레이터를 꼭 돌려주어야 한다. 등유난로는 더운 공기가 위로만 올라가기 때문에 공기를 순환시켜 주어야 실내 전체가 따뜻해진다.
파세코 등유난로는 감성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한 달 가스비가 50만 원 가까이 나오다니! (심지어 등유비를 뺀 금액이다. 이것까지 하면 50만원은 훌쩍 넘는다.)
제주도에서 따뜻하게 살려면 겨울철 난방비 폭탄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성산에 사는 지인이 난방비 때문에 열을 내며 이런 말을 했다.
"한 달에 난방비 50만원 나와도 좋은데, 억울한 것이 뭔지 알아요? 따뜻하게 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나온다는 거예요. 따뜻하게 살고 많이 나오면 억울하지나 않지."
시골에서 잔디 마당에 그림 같은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것이 로망인 사람들이 많은데, 시골 단독주택에 살려면 아파트 도시가스비의 몇 배가 되는 난방비를 각오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음과 양이 있다.
겨울철 우리 가족이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거실에 놓인 팬히터의 전원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하루를 똑같이 시작했는데, 기름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렸다.
삐삐삐~~!
이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오후에 주유소에 가서 등유 한 통을 받아와서 팬히터와 난로에 기름을 채워 넣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앞으로 2주 정도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겨울바다를 보러 제주도에 오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다. 설경이 멋진 한라산에 가는 것도, 한적한 돌담길을 걷는 것도 멋진 일이다. 이렇게 여행으로 겨울 제주도를 찾는 것은 설레는 일이지만, 제주도민으로서 겨울을 나는 것은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