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도로 퇴근한다. 그리고... 출근도 한다.
제주도에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그래도 괜찮은 직업이다. 제주도에는 귤이나 무농사 등 농업, 숙박이나 음식점 등 관광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기업이나 산업체가 별로 없어 직업군이 다양하지 않다. 요즘 공무원에 대한 직업 선호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안정적인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하다. 그중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제주도에서 그래도 괜찮은 대우를 받는 직업이다.
나는 제주도와는 연고가 전혀 없는 육지인이다. 제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육지것'인 셈이다. 제주도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제주도 초등교사는 98%이상(물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제주교대 출신이거나 제주 출신이라는 점이다. 제주도는 유난히 지역 사회가 좁아서 '제주도에서 한 다리 건너 모르면, 두 다리 건너 다 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모두 지인의 아들딸, 지인의 부모, 누구의 동생, 누구의 형 오빠, 누구의 누나 언니인 제주도 사회에서 나와 같이 아무것도 얽힌 것이 없는 사람이 오면 제주인들은 당황한다.
'고향도 달라, 학교도 달라, 경력은 많아~~ 아! 불편해.'
교장, 교감 선생님도 나를 불편해 하니 다른 선생님들은 오죽하랴.... 이쯤되니 괜히 미안해진다.
서울에서 제주도에 정착한 이주민의 직장내 생존법!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한 가지는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바로 내가 '육지것'이라는 점이다. 혹여 제주어를 쓰는 그들과 같아지려는 마음에 어설픈 제주어를 써서는 안 된다. 내가 아무리 똑같이 흉내냈다고 생각해도 그들은 이미 찐인지, 아닌지 다 알고 있다. 육지와 다른 문화(정말 신기한 것들이 많다)를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제주도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신들만의 문화를 이루며 도민끼리 결착하고 살아왔다.
내가 제주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퇴근후에는 직장과 관계된 사람들을 일절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직장 동료와 만나 술을 마시고 어울렸다. 퇴근이나 휴일은 쉬라고 있는 것인데 직장 동료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니면 그야말로 직장생활의 연장선이다. 그때는 그래야만 성공하고 잘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도에서의 나는 퇴근을 하면 운동을 하고,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 등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시간을 채운다. 이도저도 싫으면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제주도 바다를 감상한다. 주말에는 캠핑을 하고, 호캉스를 즐기고, 박물관에 가고, 제주도 관광지를 이곳저곳 여행한다. 제주도에 사니 세상의 중심이 직장에서 가족으로 옮겨왔다. 직장은 job일 뿐 life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제주도에 내려와서 깨달았다.
나는 제주도에서 직장생활을 한 이후로 직장 동료와 공적인 관계 외에는 사적인 관계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동학년 교사를 제외한 교직원과는 대부분 대화 한 번 해보지 않았다. 내가 무신경하거나 직장의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내 삶에서 크게 차지하는 영역이 조직에서 나 개인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이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지내니 오히려 사람 사이에 갈등이나 뒷말이 없고 깔끔하다.
직장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
그것이 (전)서울 직장인의 제주도 직장 생존법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직장생활을 힘들어 하고 퇴사를 꿈꾸며, 수없이 번아웃이 오는 이유는 직장에 내 몸과 마음을 모두 갈아넣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우리가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이유도 내가 행복하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 만족도가 50% 미만이었다면 지금 나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120%이다. 앞으로의 제주살이, 제주직장살이도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
"나는 제주도로 퇴근한다. 그리고... 출근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