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제주도에 겨울이 찾아왔다.
내가 제주도에 살아보니 이곳은 사계절은 아닌 것 같다. 날씨만 놓고 보면 봄, 여름, 겨울 삼계절이다.(사실 봄도 애매하다. 그럼 이계절?)
지난주까지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로 날씨가 따뜻했는데 제주도에 갑자기 겨울이 찾아왔다. 제주살이에 있어 가장 혹독한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제주도에서 겨울을 보내려면 한달에 40~70정도 되는 난방비를 각오해야 한다.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일부 시내권을 제외하고 제주도 대부분의 집들이 기름보일러나 LPG 가스보일러로 난방을 하기에 난방비 폭탄은 피할 수가 없다. 특히 올해는 등유값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라 기름보일러를 쓰는 가정에 비상이 걸렸다.
제주도의 겨울은 참 적막하다. 분명 기온상은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는데 제주도의 바람은 몸과 마음을 차갑게 만든다. 겨울철 제주도는 육지보다 빨리 해가 지고, 관광지로서 비수기이기에 해안도로를 따라 늘어서있던 상점들이 대부분 일찍 문을 닫는다. 아예 겨울철에는 휴식기를 가지고 영업을 하지 않는 가게도 많다. 여름에 관광지를 화려하게 만들었던 조명과 음악소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조금 낫겠지만 나처럼 제주도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주도의 겨울은 쓸쓸하기만 하다.
지난 주에 출근을 할 때는 얇은 와이셔츠에 안이 비치는 여름 자켓을 입었는데, 오늘 출근을 할 때는 제법 두꺼운 자켓을 챙겨 입었다. 같은 시각에 출근과 퇴근을 하는데 예전과 다르게 출퇴근길이 화창하지 않고 어둡다. 분명 제주도에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오늘 퇴근하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등유 한 통을 받아왔다. 복층으로 된 전원주택에 아무리 LPG 보일러를 떼어도 썩 훈훈해지지 않는 것을 알기에 우리 가족의 완소 아이템 '신일팬히터'에 기름을 채웠다. 휘발유 가격과 똑같은 등유를 한 통 받아야 했기에 마음은 쓰라렸지만 전원버튼을 켜자 금세 집안공기가 데워져 잠시나마 행복을 느꼈다. 아이들은 팬히터 앞에 앉아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주도의 겨울이 강원도나 경기도의 산간 지역처럼 극한은 아니겠지만 제주도의 겨울은 참 길다. 11월 중순에 찾아온 겨울은 다음해 봄이 되어도 쉽게 물러가지 않고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5년전 방송했던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즐겨입던 옷스타일을 봄에 유독 제주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3~4월이 되어도 은근히 느껴지는 제주도의 추위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니 괜히 마음이 적적하다. 제주도에 전혀 연고가 없는 외지인이 느끼는 제주도의 겨울은 더욱 외롭고 쓸쓸하다. 사악할 정도로 오른 기름값과 가스비 때문에 올해 제주도에서의 겨울나기는 더욱 힘이 들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먹기라고...... 제주도에 살고 싶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온 만큼 더욱 행복하게 겨울을 날 것이라고 마음을 추스려본다.
제주도의 겨울은 길고 춥겠지만,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겨울을 물들이는 귤빛의 풍경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주황빛의 향연을........
나는 지금 제주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