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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Dec 26. 2022

현대인들에게 여행의 의미란?

제주살이에서 여행의 의미를 발견하다.

  집에서 편히 쉬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학년말 마무리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주말이면 육지에서 내려오는 손님치레와 이웃과의 만남까지 여유롭게 집에서 쉬어본 적이 없다. 주말을 보내고 다시 한 주가 시작되면 더 피곤해지는 이유이다. 


  모처럼 아무런 약속이 없던 주말, 우리 가족은 성산에 사는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이 부부는 몇 번 내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기도 한데 남자는 공인중개사, 여자는 우리 부부와 같은 초등교사이다. 특히 여자분은 제주이주를 위하여 임용고시를 다시 보고 내려왔기에 나와도 공통점이 많았다. 제주살이 초반 어려운 일이 많았을 때 우리는 이 부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부부가 얼마전 펜션을 오픈했다. 부부가 살던 전원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숙박업소로 탈바꿈시킨 것인데 벌써 소문이 나서 예약이 꽉 찬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가족을 위하여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은 예약을 받지 않고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남자분이 웬만한 것은 직접 리모델링했는데 워낙 솜씨가 좋아 기대는 했지만 직접 가보니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자쿠지에, 불멍코너에, 영화감상실, 통창, 감성적인 룸과 거실. 우리 부부는 예쁜 공간에 사진 찍기에 바빴다. 

성산의 펜션 비행기 발자국

  그동안 일과 사람에 지쳤던 우리가 이 부부의 만남을 주저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서로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기에 이 부부를 만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술자리를 하다가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 쉬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늦으면 늦는대로, 시간이 가면 가는대로 그냥 둔다. 

  연락이 뜸해지거나 만나지 못해도 어색하지 않다. 언제든 전화하면 반갑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런가 보다.'할 뿐이다. 단 한 번도 서로

  "왜 연락 안해? 그렇게 바빠?"

라고 빈정댄 적이 없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주말을 보내니 절로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거기에 제주도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산의 풍경이 통창에 가득 들어오니 멍하니 있어도 행복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이 났다. 남자가 직접 돌을 놓아 제작한 자쿠지 안에서 따뜻한 온수로 물장난을 하고 있으니 이날 만큼은 스마트 기기가 필요 없다. 어른들은 거실에 앉아 멋진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온수풀에서 물놀이라니...... 이보다 더한 휴식이 있을까? 시간이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할 뿐이다. 하룻밤을 지내고 오후가 한참 지나서야 떠날 채비를 마쳤다.

  "고마워서 어쩌지? 우리 안 왔으면 몇십만 원은 벌 수 있는 건데. 다음에 애월에 오면 우리가 한턱 낼게."

라는 나의 말에 남자가 말했다.

  "저희 이러려고 하는 거예요. 덕분에 얼마나 좋아요. 우리 가족끼리는 여기 오지도 않아요." 

  이 말에 부부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지인이 오픈한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하고 왔다. 월정리 시골집을 손수 개조하여 오픈한 카페는 참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거기에 커피 맛까지 일품이니 더 바랄 것이 없다. 아이들이 왔다고 조각케익과 우유까지 서비스로 주는 젊은 주인의 인심에 마음이 푸근했다. 감성적인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행을 마무리하니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한 느낌이다. 

월정리의 작은 카페 buik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말했다.

  "여행은 할 때는 좋지만 집에 올 때면 항상 피곤하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 오히려 힘이 나네? 이번 여행은 제대로 힐링을 하고 온 것 같아. 그치?"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를 보며 우리 가족 모두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집에 와서 짐을 정리하는 것도 전혀 번거롭지 않았고 다가오는 월요일 출근이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가뿐하게 일어나 출근을 했다. 


  제주도에 살며 진정한 힐링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아름다운 제주에 산다고, 멋진 관광지와 호텔이 있다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힐링이란 좋은 사람과 아무런 조건이나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면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있다. 시간이 지나 헤어질 때면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 속은 에너지가 차오른다. 바쁜 현대인들은 마음 속에 여유가 없다. 그래서 어렵게 시간을 내서 떠난 여행도 여유없이 전투적으로 시간을 보낸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할 사람처럼 마음이 조급하고 바쁘다. 과연 우리는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매일을 바쁘고 힘들게 사는 현대인에게 여행은 tour가 아닌 break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여행의 이유이며 목적이다. 

  나는 제주에 살며 가끔은 멈추어 서며 살고 싶다.

  그렇게 여행다운 여행을 하며 살고 싶다.

아내가 유난히 자쿠지에서 행복해 했다. 덕분에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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