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글램핑을 즐기다.
"나 이번 주말은 절대 그냥 못 넘어가니까 그렇게 알아!"
지난주 금요일 새학년도 준비를 위하여 출근을 하는 아내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제주도에 살면 뭐 하나? 직장 가고 집에만 있으면 서울 아파트에 사는 거랑 똑같지. 오늘 캠핑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렇게 단단히 벼르고 준비한 캠핑, 문제는 날씨였다. 주말 내내 비가 예상되어 빗속에서 텐트를 치고 걷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중 캠핑은 하고 싶은데 혼자 텐트 칠 자신은 없고, 그때 생각난 것이 글램핑이었다. 서둘러 제주도에 있는 글램핑장을 검색했다.
'엥? 글램핑이 18만원? 그냥 호텔 갈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닥에 온돌이 들어오고 실내에 화장실이며 취사 시설까지 모두 갖춘 모습에 큰 마음을 먹고 예약을 해버렸다.
캠핑장에 도착하니 벌써 텐트 몇 동이 들어서 있었다. 신설 캠핑장이라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몇 사이트는 비어 있었지만, 공기 좋고 조용한 캠핑장 모습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비가 온다더니 날씨만 흐릴 뿐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텐트 칠걸.'
하는 내 아쉬운 마음과는 상관없이 오랜만에 밖에 나온 아이들은 신이 났다. 캠핑장에 설치된 대형 트램폴린에서 신나게 뛰고, 넓게 펼쳐진 잔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한참을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배정받은 글램핑 문을 여는 순간
"우와!"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뜨끈뜨근한 방바닥과 넓은 침대, 텔레비전, 각종 취사도구에 깔끔하고 넓은 화장실까지.... 이건 넓은 원룸 하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겨울에 캠핑을 하면 추위 때문에 항상 고생인데 바닥에 온돌이 들어오니 건조하지도 않고 쾌적했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캠핑을 오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방학 동안 싸우기만 하던 남매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이좋은 제주 남매로 변해 있었다. 모처럼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며 아내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저녁을 준비했다.
"와! 이게 다 뭐야? 너무 좋다."
퇴근하자마자 캠핑장으로 온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을 하는데(금주선언은 했지만 이런 날은 마셔야지!) 때마침 내리는 비,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맥주는 마음 가득 행복의 기운을 채워 주었다.
"얼마나 좋아. 공기 좋지, 비도 오지, 편안하지, 배부르지. 집에만 있으면 여기가 제주도인 것 알아? 나와야 제주도인 것을 알지. 나 앞으로 아무리 바빠도 일부러라도 자주 놀러 다닐 거야."
그렇게 우리 가족은 지난 주말, 사치스러울 정도로 편안한 캠핑을 했다.
아이들도 글램핑 캠핑의 기억이 만족스러웠는지 언제 또 갈 거냐고 묻는다. 캠핑만 하면
"춥다, 허리 아프다, 씻기 불편하다, 준비하기 번거롭다, 힘들다...."
등등의 이유를 대며 싫어하던 아내가 오늘 아침에 함께 출근을 하며 말했다.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 주말마다 자주 다니자. 캠핑이든 뭐든."
이쯤되면 지난 주말의 캠핑 작전은 대성공인 셈이다.
관광객이 아닌 제주도민으로 오래 살다보면
아무리 바다가 예뻐도, 오름이 멋져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감각해질 때가 많다.
직장 생활, 인간관계, 육아 등 현생에 지쳐 집에만 있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집에 갇혀 문밖을 나오지 않으면 제주도에 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이 불편한 섬에 사는 것이 고단할 뿐이다.
현실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 때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현관문만 열어도 보이는 제주의 바다를 눈에 가득 담고
조금만 걸어도 정상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제주의 오름을 다리에 힘을 주어 오르고 싶다.
그것이 제주도에 살고자 했던 이유이며
이곳에 살며 지키고 싶은 마음이기에
더 제주도를 느끼고자 노력하려 한다.
그나저나
아내와 아이들이 캠핑을 다시 좋아하게 된 것은 다행인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편안한 글램핑의 맛을 보니 내가 다시 텐트를 칠 수 있을까 싶다.
온 가족이 글램핑만 찾게 되면,
이 많은 장비는 다 어쩌지?
당근에 물어봐야 하나....? (당근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