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캠핑을 시작하다.
제주도로 이주했다고 하면 육지에 있는 지인들은 꼭 이렇게 묻는다.
"골프 자주 치겠네?"
"낚시하세요?"
내가 둘 다 안 한다고 대답하면 다시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제주도에서 뭐 하세요?"
골프와 낚시에는 관심이 없지만 나도 한 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캠핑이다. 서울에 살 때 캠핑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장비도 몇백을 들여 장만했다. 하지만 딱 두 번 하고 근무하던 학교에 모두 기부했다.(지금 생각하면 아까워서 잠이 안 온다.)
지난 일이지만 내가 서울에서 캠핑을 포기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캠핑장 예약이 너무 어려웠다. 서울 근교의 캠핑장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가까운 캠핑장에 가려면 며칠을 컴퓨터 앞에 있어야 했다. 둘째, 캠핑장까지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금요일 퇴근 후 교통지옥을 벗어나 캠핑장에 도착하면 벌써 하루가 거의 지나가 있었다. 저녁 늦게 텐트 치고 아침 11시까지 걷어야 하는데 걷고 치다가 시간이 다 갔다. 이럴 거면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낫다. 셋째, 아이들이 너무 어렸다. 캠핑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그때는 아이들 잡으러 다니기도 힘들었다.
제주도는 정말 캠핑의 천국이다. 제주도는 첫째, 멋진 뷰의 노지 캠핑장이 지천에 널려있다. 성수기가 아니면 바다이든, 오름이든 어느 곳에 텐트를 쳐도 뭐라하지 않는다. 둘째, 관광지이다 보니 무료 화장실이 많다.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기와 화장실이다. 전기는 안 쓰면 그만인데 화장실은 방법이 없다. 그래서인지 쾌적한 화장실 주변에는 캠핑카와 텐트가 많이 있다. 셋째, 캠핑장 예약이 어렵지 않다. 유명한 오토캠핑장도 넉넉하게 일주일 전에만 예약하면 된다. 당일에 예약이 되는 경우도 많다. 예약이 안 되면 그냥 바다 앞 공터에 치면 된다. 넷째, 캠핑장 가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제주도가 섬이다 보니 멀어봐야 한 시간 이내이다. 그만큼 캠핑장에서 즐길 시간이 늘어난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제주도에 와서 다시 캠핑에 입문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이제 다닐만했다.
캠핑에 빠진 사람들은 알 것이다. 캠핑장비를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는 심정, 택배박스를 열 때의 설렘.
장비를 트렁크 가득 싣고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칠 때는
"내가 미쳤지. 집 놔두고 무슨 고생이람. 다신 안 해!"
하지만 복귀해서는 새 캠핑장비를 검색하고, 더 좋은 캠핑장소를 예약한다. 이것은 중독의 초기증상이다. 그러다가 캠핑장비가 늘어나 차를 바꾸려 한다.(나도 차를 두 번 바꾸었다.) 캠핑을 가지 않는 날에는 허전해서 마당에라도 텐트를 쳐야 한다. 이것은 중독 중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모든 캠핑장르를 섭렵하려 한다. 텐트에서 카라반으로, 카라반에서 캠핑카로. 본인도 감당못할 중독 말기가 되어야 끝이 보인다. 그 전에 누군가 말려주어야 한다. 난 지금 중증 상태이다. 캠핑장을 못 가는 날에는 마당에 텐트를 친다.
요즘은 목요일 밤만 되면 가슴이 뛴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 가지? 내일 날씨가 좋다는데 캠핑장 예약할까?’
라는 생각에 어릴 때 소풍 전날처럼 설렌다. 이런저런 이유로 캠핑장을 가지 못해도 괜찮다. 마당에 텐트를 치고 화로에 장작을 태우며 불멍을 하면 된다.
캠핑은 참 신기하다. 캠핑을 하면 그렇게 자주 먹는 바베큐가 더욱 맛있고, 거의 매일 먹는 맥주가 그토록 시원할 수 없다. 장작을 태우는 불장난은 또 어찌나 재미있는지……. 제주도에 와서 매주 이렇게 캠핑을 즐기는 것을 보면 결국 나는 제주도에 올 팔자였나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잔디 위에 텐트를 치고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장작불을 바라보고 있을 나를 상상한다. 그러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제주도는 나를 이렇게 웃게 만든다.
행복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