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캠핑을 거절했다.
우리 가족이 제주도에 내려온 첫해에는 내 주변의 상황이 참 안 좋았다. 아버지께서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집을 잘못 구해서 아내는 왕복 70km가 넘는 거리를 매일 운전해서 출퇴근했다. 집은 매일 말썽이었고 처음 해보는 전원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보상심리가 발동했던 것일까? 그렇게 힘든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시간만 나면 제주도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특히 주말 날씨가 좋은 날은 집에 있으면 억울하다는 심정으로 바다, 오름, 박물관 어디든 떠났다.
제주이주 첫해부터 우리 가족이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캠핑이다. 첫캠핑 때는 변변한 장비도 없이 작은 텐트에 녹색 뽁뽁이 깔판을 깔고 추위에 덜덜 떨며 잠을 자야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내가 편한 집 놔두고 왜 노숙을 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우습게도 다시 캠핑장을 검색하고 장비를 보완하여 주말마다 쉬지 않고 캠핑을 떠났다. 그 결과 지금은 캠핑장비를 둘 곳이 없어 마당에 창고를 따로 지어 보관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주말 날씨가 좋았다. 집 마당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파란 바다와 하늘, 본능적으로 캠핑을 떠나기에 좋은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기름을 붙는 아내의 말,
"오늘은 어디 좀 가자. 캠핑 갈래? 나 모임 다녀올테니까 애들이랑 먼저 가있어. 끝나고 갈게."
캠핑은 춥고 불편하다며 호텔만 좋아하는 아내가 먼저 캠핑 이야기를 하다니, 그동안의 고생이 헛된 모양은 아니었나 보다.
"오케이, 텐트 다 치고 전화할테니까 와!"
이렇게 큰소리를 쳤으니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몸을 움직이기가 싫었다. 전날 헬스장에서 하체 운동을 심하게 했었는데, 캠핑 생각을 하니 갑자기 몸이 욱신거렸다.
'나 혼자 다 챙기고 나 혼자 다 치라고? 어느 세월에!'
하는 생각에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냉장고문을 열었는데 하필이면 눈에 떡~하니 보이는 맥주캔!
'에라 모르겠다.'
나는 마당에 펴져 있는 캠핑의자에 앉아 맥주 한 캔을 원샷해버렸다.
'캠핑이 뭐 별건가? 잔디마당에 앉아서 맥주 마시면 그게 캠핑이지!'
그렇게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며 따뜻한 햇볕이 드는 마당에서 혼자만의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아빠 오늘 캠핑 안 가? 간다며!"
보다 못한 딸아이가 물었다.
"응, 못 갈 것 같아. 아빠가 나이 들었나 보다. 예전 같았으면 억지로 끌고 나갔을 텐데...."
"아빠 힘들구나? 그럼 가지 마."
쿨하게 돌아서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니 괜히 씁쓸해졌다.
노는 것도 에너지에 비례한다고,
요즘 학교일이 바쁘다보니 주말이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그냥 거실에 앉아 '더 글로리'의 동은이를 만나고 싶고, 유튜브 채널이나 돌려보며 빈둥거리고 싶다. 차 타고 10분이면 제주의 멋진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 마당에서 보는 바다도 버겁다.
"뭐야, 아직 안 갔어? 오늘 어디 안 갈 거야?"
모임을 마치고 온 아내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날 보며 말했다. 아내가 나갈 때 큰소리를 쳤던터라 아무 말도 못하는데, 아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다 옷 입어. 오늘 나갈거야."
아내의 말에 나도 아이들과 함께 주섬주섬 옷을 입고 차에 탔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온 사계해안!
제주도의 바다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래, 나와야 제주도지!'
눈앞에 펼쳐진 사계바다의 모습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한참을 해안가를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맛집에 들러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니 제주도 주말 저녁이 풍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화롯대 장작에 불을 붙였다. 타닥타닥 소리를 들으며 불멍을 하니 주중에 지쳤던 몸과 마음이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제주도 6년차, 우리 가족이 제주에 내려온 첫해를 생각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상황이 좋다. 하지만 그 힘들었던 시기, 우리 가족은 제주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러한 시간이 우리 가족을 버티게 만들었던 힘이었다. 익숙해지면 소중함을 모른다고.... 제주에 오래 살면 살 수록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바람, 공기, 빛깔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행복함도 많이 느끼려고 노력할 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아름다운 제주도를 느끼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오려 한다. 시간이 될 때마다 바다를 찾고 오름을 오르고, 관광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제주도로 이주했던 첫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나와 우리 가족이 더욱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다음주에 가족들이 캠핑을 가자고 하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