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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Jun 26. 2023

부산 사람들은 참 따뜻하다

부산에서의 6개월, 그 아름다웠던 추억

  시간이 좀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제주도에 정식발령이 나기 전, 부산에서 잠시 생활했던 적이 있다. 제주도 교육청 임용고시에 합격을 하고 금방 발령이 날 줄 알고 다니던 학교에 사직을 했는데 예상을 벗어나 1학기가 끝나도록 발령이 나지 않았다. 기간제 교사 자리도 제주도에는 없고 발령이 날 때까지 무작정 쉬고 있을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육지에 있는 다른 지역 교육청의 기간제 교사 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부산은 제주도와 다르게 초등교사를 구하지 못해 난리였다는 것이다.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이참에 좀 쉬어. 6개월 돈 안 번다고 우리 어떻게 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갈등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2학기 시작을 이틀 앞둔 8월 30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산교육청 기간제 교사 구인란에 올라온 수많은 초등학교 중 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

  "저... 기간제 교사 때문에 전화 드렸는데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를 받으신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나는 부산에 가게 되었다.

내가 자주 이용했던 역과 잠시 근무했던 부산의 학교

  부산으로 올라오는 날 아침, 마음이 참담했다. 발령도 나지 않았는데 멀쩡한 학교를 의원면직하고 기간제 자리를 찾아 낯선 곳으로 홀로 올라올 때 드는 생각이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이 생각 하나 뿐이었다. 거기에

  "아빠가 왜 가야하는지 나는 이해가 안가. 우리 제주도에서 행복했잖아~~!!"

하며 공항에서 내 다리를 붙잡고 우는 9살 딸아이 때문에 덩달아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이산가족만큼 슬픈 이별을 하고 도착한 부산, 중학생 때 딱 한번 해운대에 와봤던 부산은 나에게 외국처럼 낯설었다. 한여름이었지만 한없이 춥고 외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이런 기분은 공항에서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조금씩 사라져갔다. 초등학교로 간다는 말에 본인의 딸도 초등교사라며 친근하게 말을 거는 기사님 덕분에 마음이 점차 따뜻해졌다. 좋은 직업을 가졌다며 훌륭한 선생님이 되라는 덕담까지 남기시고 기사님은 나를 학교 정문에 데려다 주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간 교무실, 마치 교육감이라도 온 듯 반기며 인사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두렵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떻게 제주도에서 이렇게 귀한 분이 오셨어요. 언제든 급한 일이 생기시면 말씀하세요. 금요일은 수업 마치시면 일찍 내려가 보시고요. 점심식사 아직 안 하셨지요? 식사도 하고 가세요."

  인사를 온 첫날 점심식사까지 얼떨결에 교무실에서 하고 나서야 내가 담임을 하게 될 2학년 교실에 갈 수 있었다. 마침 개학 준비로 출근을 하신 동학년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분들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는 소중한 인연으로 남아 있다. 내가 부산에서 근무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료 선생님들이 나를 부를 때 "부장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부장교사로 근무했던 경력 때문인지, 아니면 곧 정식 발령이 나는 교사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부장교사로 근무하다가 기간제 교사로 있는 나에 대한 예우 차원인지 부장교사도 아닌 나를 그렇게 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그들의 세심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따뜻한 부산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교직생활을 경험했다.

  선생님들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담임했던 아이들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2학기 개학 첫날, 내게 먼저 다가와

  "선생님, 우리 학교 식은요~~ 식당번이~~ 배식차지고와요~~(부산 억양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라고 먼저 알려주는가 하면 수업시간에 친구가 떠들거나 말썽을 부리면

  "니!! 왜카는데? 하지마라! 선생님 힘드시다~~"

라며 친구를 타이르고 나를 위해 주었다. 20년 가까이 교사로 살아오며 모든 아이들이 다 예쁘고 귀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이들로 인해 교직생활이 편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6개월을 부산에서 지내며 부산 사람들은 참 정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제주도로 떠나는 마지막 날, 아이들이 나를 부등켜 안고 우는 통에 나도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때의 아이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카톡방에 나를 초대해 놓고는 놓아주지를 않는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산에 갈 때는 그토록 참담하고 서글펐는데 부산에서의 6개월 기간제 생활은 내 교직 인생에 반짝이 가루를 뿌려놓은 듯 지금도 가슴 속에서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다. 서울에서 부장교사로 지내던 내가 부산까지 가서 기간제 교사를 했던 누구도 경험하기 힘든 기가막히고 신기하기만 했던 시간, 어쩌면 이 모든 일이 내 인생에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남기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을까?


  나에게 부산은 특별한 곳이다.

  짧지만 나와 잠시 인연을 맺었던 부산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부산 사람들은 참 따뜻하다.

발령이 나고 1년이 지나 다시 찾아가 찍었던 단체 사진. 내 인생의 보석같은 아이들, 고맙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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