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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Jul 22. 2023

열정과 패기, 그리고... 순응

나는 초등교사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초등교사였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 최고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지금도 매일 아침 아버지 손을 잡고 학교를 등교하던 때가 선명하다. 등굣길에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선생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면 어린 마음에 어깨가 으쓱하고는 했다. 아버지는 출근을 하실 때 항상 정장을 갖춰 입으셨는데 교사의 행동, 옷차림 하나하나도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는 뼛속 교사셨다. 천성이 온화한 성품을 가지셨던 아버지는 때에 따라서는 누구보다 엄한 교육자의 모습을 보이셨는데 그런 모습은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었다. 나도 아버지처럼 멋진 교사가 되고 싶었다. 오직 초등교사 하나만을 바라보며 교대에 진학했다. 

  임용고시 최종합격자 발표날,

  청주의 조그마한 자취방에서 합격자 명단을 아버지와 함께 확인하고 나는 아버지를 등에 업고 자취방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머니는 그 뒤를 따라다니시며 박수를 치고 좋아하셨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께 한 최고의 효도이자 마지막 효도였다. 간암으로 투병중이셨던 아버지는 내가 발령이 나던 해에 학교를 그만 두셨다. 그렇게 나는 초등교사가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과 교직에 대한 자긍심 때문인지 나는 교사로서의 프라이드가 누구보다 높은 사람이었다. 주위에서 교사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들으면 참지 못했다. 20대 후반 혈기왕성한 때의 일이지만, 한번은 학교운영위원회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가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이~~ 신삥, 술 한잔 따라봐."

라며 반말을 계속 해대는 학운위 위원장의 멱살을 잡은 적이 있다. 심지어 그 위원장은 지방법원 부장판사였다. 동생 같아서 그랬다는 학부모의 말에 내가 한 말은 두고두고 교직원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내가 당신하고 형동생으로 만났어? 당신하고 법원에서 만날 일 없고!"

  그날 밤 아버지께 혼날 각오를 하고 씩씩대며 이 일을 이야기 했는데 아버지는 의외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눈치를 보자 아버지께서 딱 한 마디를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내일 출근해야지. 가서 자라."

  

  다~~ 지난 17년 전 까마득한 일이다. 만일 같은 일이 생긴다면.... 어딜? 감히! 화를 낼 수 있을까? 언젠가 내 젊은 시절을 아는 선배가 

  "너 똑같은 일 생기면 그렇게 할 거야?"

라고 물어서

  "아뇨. 미쳤어요! 어딜 교사가...... 부장판사님이 형동생하자는데 동생해야죠."

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년에 가까운 교직생활은 '교직에 대한 프라이드 하나로 살던 혈기왕성한 교사'였던 나를 '능수능란하게 넘어가는 둥글둥글한 교사'로 바꾸어 놓았다. 내가 오랜 기간 교사로 지내며 터득하고 알게된 것은 교사라는 직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대단하거나 존중받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교사로서 학부모와 학생들과 잘 지내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나도 학부모와 아이들 문제로 힘들고 스트레스 받았었는데, 원만하게 지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학부모에게는 자녀에 관하여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학생이 대들어도 한숨을 쉬며 넘기면 된다.

  "휴~~ 그냥 가라."

요즘은 체육교사로 지내고 있습니다.

  서글픈 사실이지만 교사를 스승이라 칭하며 존경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끝이 났다. 요즘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리 놀랍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동안 교사로 지내며 비슷한 일들을 종종 보았고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요즘 MZ세대 젊은 교사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있다.

  "교직의 탈출은 지능순이다."

  교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평생직장, 정년을 생각했던 우리 세대의 교사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다. 하지만 어렵게 교대에 입학하고 죽어라 공부해서 임용고시를 통과한 그들이 겪은 교육현장은 더욱 충격이었을 것이다. 요즘 교대를 졸업하는 우수한 인재들을 생각하면 선배교사로서 그들의 또 다른 선택과 결심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2년이 넘었다. 내가 올리는 글들이 대부분 제주살이나 캠핑, 차박 등 교육과 관련된 글이 아닌 것은 이 공간에서 만큼은 교사인 것을 잊고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 나에게 교사는 직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사를 무시하고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부장판사의 멱살을 잡았던 열정과 패기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응으로 바뀐지 오래이다. 누가 보아도 긍정적이고 순종적이며 일 잘하는 부장교사가 된 지금, 가끔은 그때의 내가 그립기도 하다. 


  열정과 패기, 그리고... 순응!

  어찌되었든 

  나는 초등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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