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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너란 놈~~!!

제주도와 맥주의 상관관계

by JJ teacher

서울에 살 때 나는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직장 회식을 하면 왜 이리 술을 주는지 몰래 탁자 밑에 버리거나 그러지 못하고 취하면 다음날 정말 괴로워하며 다시는 술을 안 마실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맥주 없이는 못산다.

퇴근하면 퇴근맥,

주말이면 주말맥,

낮에 하면 대낮맥,

여행가면 여행맥,

가족끼리 저녁맥...

정말 갖다붙이는 이름도 다양하다. 이틀 전에는 아들이 태권도학원에서 녹색띠를 땄다고 축하주를 마셨다. 아들이 태권도학원에서 승급을 한 것과 술 마시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도 우습다.

다양한술2.jpg 제주도에서는 마시는 술도, 장소도 정말 다양하다.

심지어 우리집 문화 중에 매일 저녁 '짠타임'이 있다. 아이들은 음료수, 아내와 나는 맥주로 항상 짠~을 하며 하룻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행복한 우리 가족을 위하여~!, 아빠의 출근을 위하여~!, 엄마의 복직을 위하여~!, 중현이의 태권도 심사를 위하여~!, 혜현이의 새로운 레고장난감을 위하여~!"

정말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우리 가족은 돌아가며 건배사를 하는데 아이들도 이제는 소재가 떨어졌는지 아무 것이나 갖다 붙인다.

"우리 가족의 행복한 제주라이프를 위하여~!"

는 이제 지겨울 정도이다.

짠타임.jpg 어떻게하든 건수를 만들어 가족들과 '짠타임'을 갖는다.

"나 이제 술 그만 먹을거야. 나만 살쪘어."

아내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항상 이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도 아내는 아침에 이 말을 하고, 퇴근하자마자 시원하게 퇴근맥을 들이켰다.

"내가 뭐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지 알아? 애들 가르치기 힘들어서 그래."

누가 뭐래? 괜히 찔리니까....

퇴근.jpg 요즘 제주도 날씨가 너무 좋다. 출근 가방을 던져놓고 퇴근맥을 안 할 수가 없다.

1인당 술 소비량이 제일 많은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가? 바로 제주도이다. 아무래도 제주도가 관광지이다보니 관광객들이 여행을 오면 술을 많이 마시고, 그보다도 제주도민들이 정말 술을 많이 마신다. 도시와 다른 것은 도시 사람들은 술집에서 마시지만, 제주도민들은 집에서 마신다. 제주시 중심가를 제외하고는 도시처럼 술집이 많지도 않고, 특히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해가 정말 짧다. 해가 진 제주도에서 할 일이 별로 없다. 도시는 해가 져야 도시가 살아나지만 제주도는 그렇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족들과 술 한잔을 하며 대화를 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이다. 술을 자주 마시는 것은 좋지 않지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가족간 대화가 많아졌다. 제주도에 와서 가장 달라진 점 중의 하나이다. 가족간 관계가 고민이라면 '제주도 한달살이'를 적극 권장한다. 분명 사이가 좋아질 것이다.


올해 2월에 공무원 건강검진을 했다. 매일 술을 마시다보니 괜히 찔려 솔직히 걱정을 했다.

'서울에서 간수치 조심하라고 항상 써있었는데, 나빠졌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에 결과지를 받으러 가는 날 잔뜩 긴장하며 같다.

그런데 깨끗했다. 처음으로 비고란에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그렇게 술을 마셨는데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다.

"거봐, 공기 좋은 곳에서 마시는 술은 괜찮다니까. 내가 뭐 소주를 몇 병씩 마시는 것도 아니고, 맥주 한 캔, 두 캔인데. 여보나 조심해. 여보가 더 마시잖아."
오랜만에 큰소리도 쳐보았다. 그날 저녁, 여지없이 가족과 짠타임을 가졌다.

"아빠의 건강검진 합격을 위하여! 건강한 아빠를 위하여~~!"

1619090560396558000_1280.jpg 정말 깔끔하다. 다~ 공기가 좋아서 그렇다.

제주도는 참 신기한 곳이다. 제주도에 살면 가족과의 시간이 늘어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료 선생님들도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선생님은 서귀포시에 살고, 어떤 선생님은 제주시에 살고, 애월에 살고, 조천에 살다보니 모두들 차를 몰고 다닌다. 서울처럼 지하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차가 없으면 다음 날 출근이 곤란하다. 그러다보니 회식을 해도 술을 마시지 않고, 대부분 식사만 하고 집에 간다. 이러니 가족과의 시간이 늘어날 수 밖에...... 덕분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매일 엄마, 아빠가 집에 일찍 오니 아이들은 얼마나 좋겠는가? 그덕에 제주도에 와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온전하게 지켜본다. 이것도 행운이다.


서울에서의 삶을 상상해 본다. 내가 서울에서 살았다면 매일 가족과 '짠타임'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처럼 교장의 술상무 역할을 하며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괴롭게 마시고 있지는 않았을까? 물론 그만큼 사회적 지위나 역할은 올라갈 수도 있었겠다.

그래도 난 지금이 좋다. 아내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태권도학원에서 띠를 바꾼 것을 축하하고, 새로운 장난감을 산 것을 기념하며 짠타임을 갖는 시간이 직장에서 회식을 하는 시간보다 몇 배 더 소중하다. 이것을 어느 것과 바꿀 수 있을까?

제주도와 맥주의 상관관계,

음.... 아마도 필요충분 관계가 아닐까?

정말 끊을 수 없는 사이이다.

맥주는 우리 가족의 제주라이프를 더욱 빛나고 풍성하게 해준다.

누군가 이런 말을 듣고

"비겁한 변명입니돠~~~~!"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이다!

매일 마시는 맥주이지만 지겹지 않고, 건강도 괜찮고, 우리 가족들이 행복한 것을 보면 이 모든 것이 가족과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방법이 없다.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는 정말 미워할 수 없는

맥주 너란 놈~~!!


글을 쓰는 지금도 맥주를 마신다.

1619092910327976000_1280.jpg 맨날 술이야~~ 정말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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