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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고기맛에 빠지다

-바베큐와 치킨, 그리고.... 웨버

by JJ teacher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입이 워낙 짧아 먹는 것을 귀찮아하고, 야채나 과일을 좋아해 기름기가 많은 고기는 멀리했다. 서울 아파트에 살 때 삼겹살이라도 한 번 구워 먹으려고 하면 식탁이며 바닥, 천장까지 기름투성이가 되어 차라리 안먹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요즘 고기맛에 빠졌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웨버로 구운 고기의 맛을 알게해준 성산부부와 제주흑돼지 온라인마켓을 운영하는 옆집 강남부부 탓이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 아내의 직장동료였던 성산읍 여선생님 집에 저녁초대를 받았다. 여선생님의 남편은 나와도 친한 사이였는데 우리를 초대한 날 제주흑돼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고기를 굽는 그릴이었다. 뚜껑이 있는 바베큐 그릴이 집에 떡하니 있었다. 난 그렇게 생긴 것은 펜션에나 있는 것인줄 알았다.

"이게 뭐야?"

"형님, 웨버 모르세요? 여기에 구우면 뭘 구워도 다 맛있어요."

성산 동생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 부부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고기맛을 보았다. 가끔 흑돼지 생각이 나서 집에 있는 버너에 불판으로 고기를 구워먹어 보았지만 그때 먹어보았던 맛이 아니었다.

애월로 이사를 오고 우리가 제일 먼저 산 물건은 웨버였다. 이거저것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적극적으로 사라고 했다. 웨버가 도착하고 실물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막막했다.

"다시 반품할까? 아니면 팔아버릴까?"

내가 이렇게 말하자

"일단 놔둬. 배워서 사용하면 되는 거지."

라며 만류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웨버와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우리 가족은 웨버 없이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냉장고에 고기 한 덩어리만 있어도 우리는 당연한 듯 숯에 불을 붙이고 그릴에 고기를 굽는다. 웨버는 한마디로 '기다림'이다. 뚜껑을 닫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오랜 시간 기다려야 맛있는 고기를 맛볼 수가 있다. 그런 번거로움이 있는데도 절대 전기불판에 고기 한 덩어리조차 굽지 않는다. 웨버를 사용해 고기를 구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숯에 구워먹는 고기의 맛과 전기불판에 구워먹는 고기의 맛이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 비교불가, 대체불가이다.

지금 사는 타운하우스에 이사를 왔을 때 웨버를 가진 집이 우리 가족뿐이었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라.'는 말처럼 숯불에 고기를 굽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당연한듯, 이웃에 고기를 돌렸다. 우리는 좋은 뜻으로 음식을 돌린 것인데 타운하우스 주민들이 마약을 맛본듯 고기맛에 중독되어 갔다. 심지어 우리 가족이 고기를 굽는 날이면 괜히 인사를 하며 친한 척을 했다.

"오늘도 파티하시나봐요? 고기 구우세요? 지난번 고기 정말 맛있더라구요. 맛있겠다~~"

그 눈빛에서 기대심리를 읽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아내는 접시에 고기를 담아 인사를 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매번 얻어먹기만 해서 어쩌지요?"

이렇게 말하는 이웃의 얼굴에서 나는 분명 함박웃음을 보았다.

이제는 굳이 고기를 돌릴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 타운하우스는 웨버의 향연이다. 각양각색의 그릴이 집집마다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미국회사 '웨버'는 우리 가족에게 공로패라도 주어야 한다.

1620545243630524004_1280-horz.jpg 타운하우스 웨버그릴 전시장, 이날 웨버 세 개를 가동했다.

설상가상 강남에서 온 부부의 남편이 흑돼지 온라인마켓을 운영한다. 이 남자가 파는 고기가 또 예술이다. 마트에서 흔히 파는 삼겹살, 목살 이런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이 남자가 파는 고기는 프리미엄급으로 숄더렉, 프렌치렉, 오겹, 삼겹, 목살 정말 다양하다. 무엇보다 고기의 두께부터가 다르다. 제주도 흑돼지 중 프리미엄급으로만 엄선해서 판매를 한다.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고기 사장님이 주말마다 프리미엄급 제주 흑돼지를 부위별로 무한공급한다. 나는 웨버에 숯불을 피우고 고기만 구우면 된다. 물론 고기를 굽는 일이 귀찮고, 뒷처리가 쉽지 않지만 노동력을 제공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우리도 손해는 아니다.

어제는 이 강남부부가 이른 아침부터 문을 두드렸다.

"형님, 이거 샀는데 한 번만 해주세요.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서요. 훈연하려면 10시간 걸린다던데 형님은 가능하시지요?"

나는 처음에 이 물건을 보았을 때 북한의 김정은이 미사일실험을 하려고 쏘아올린 로켓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실험에 실패해서 제주도에 떨어진 것을 주워온 줄 알았다.하지만 자세히 보니 웨버사에서 나오는 그릴의 최고봉 '스모커'라는 모델이다. 이 그릴은 안에 숯 한 봉지(4kg)를 다 채워넣고 물을 부어 뚜껑을 닫은채 10시간을 훈연하는 그릴이다.


1620544388008625008_1280.jpg 이것은 김정은의 로켓이 분명하다

나는 이 로켓처럼 생긴 그릴 때문에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꼬박 10시간을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10시간이 지나고 그릴을 열어 고기를 확인하는 순간

"우와~ 대박!"

바베큐를 개봉하는 순간, 타운하우스 주민들이 모두 똑같이 외쳤다. 고기덩어리를 툭 치면 젤리처럼 찰랑이며 흔들렸다. 고기가 촉촉하다 못해 부서졌다. 입안에 넣으면 고기가 사르르 녹았다. 돼지껍질은 젤리처럼 쫀득였다.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이것은 보통의 맛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았다. 그날 타운하우스 전체가 고기축제의 날이 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고기1.jpg 이것은 고기가 아니다. 예술이다.

제주도에 내려오니 정말 고기를 자주 먹는다. 내가 40년 동안 먹은 돼지고기의 양보다 웨버를 사용한 2년 동안 먹은 고기의 양이 훨씬 많다. 제주도하면 흑돼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내가 먹어본 경험에 의하면 흑돼지나 백돼지 다 똑같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굽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어쩌다보니 고기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웨버 전문가가 되었지만 제주도에 살고 있어 이렇게 맛있는 고기도 매주 맛보며 산다.

"형님, 역시~~ 처음 써보는 그릴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 구울 수 있지?"

이웃 동생들의 칭찬에 어깨가 한 번 더 올라간 하루였지만 밤에는 거의 탈진하다시피 했다. 모두들 미친듯이 고기를 먹고 좀 쉬려는데 또 다른 이웃 대기업 휴직 사원이

"이젠 제 차례네요. 비어치킨 한 번 맛보셔야지요."

라는 통에 두 시간 꼬박 기다려 비어치킨의 신세계를 영접했다. 그것은 치킨이 아니었다. 분명 예술작품이었다.

닭.jpg 또 다른 이웃, 대기업 휴직 사원이 만든 비어 치킨, 정녕 이것이 치킨이란 말인가~?

주말에 좀 조용히 혼자 지내며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싶은데 아침부터 밤까지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이좋은 이웃들 때문에 쉴 겨를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 하나 희생해서 우리 아이들이 이웃 아이들과 친형제처럼 지낼 수 있고 아내들끼리는 언니 동생하며 가족보다 가깝게 지내고, 주말마다 나를 귀찮게 하는 세내살 아래 동생들이 있어 제주살이가 외롭지 않으니 이것도 괜찮은 일이다.


무엇보다

고기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주위 사람들 덕분에 고기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으니

제주살이가 더욱 맛이 난다.

서울촌놈

제주도에 와서

제주도 고기맛에 빠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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