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teacher Jul 03. 2024

제주에 살아보니 제주어(濟州語)가 참 아꼽다!

"너 무사 집에 안 가고 주왁주왁하멘?"

  처음 제주로 이주했을 때 낯선 제주어에 당황했던 적이 참 많다. 서울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4학년 국어 단원중에 '여러 지역의 방언'이 있어 제주어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제주어는 육지와 다른 어휘가 많아 알아 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때 수업을 하며 나는 생각했다. 

  '다 같은 한국어인데 어려워봤자지. 못알아 듣기는 무슨, 하야간 과장은!'

  그리고 몇 년 후, 제주도에 내려와 나는 교과서의 공신력에 놀랐다.


정말로 못 알아 들었다.

  제주도 교사의 98%는 제주에서 나고자라 제주교대를 나온 찐 제주 사람들! 제주인들은 제주어와 표준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내가 서울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 나에게는 기가 막히게 표준어를 구사한다. 하지만 문제는 학년회의나 교무회의, 회식자리 같은 다수의 제주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한 번은 학년회의 시간에 학년부장이 자꾸 반복하는 한 가지 낱말에 꽂혀 "잠시만요!"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회의를 멈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물었던 말!

  "그런대요,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모르크라가 뭔가요?"

  모르크라! 외국어 같기도 하고 사람 이름 같기도 한 낱말을 선생님들이 문장 끝마다 붙여대고 있는데 아무리 눈치껏, 문맥상 이해하려 해도(심지어 나는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때 더 의아하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며 하는 말!

  "모르크라가 사투리였어?"

  나중에 '모르크라'가 '몰랐구나?'라는 말의 제주어라는 것을 알고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야 말았다. '모르크라'가 '몰랐구나'라는 것을 제주 사람이 아니면 과연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제주 이주 어느덧 7년차!

  하핫! 이제는 웬만한 것은 다 알아 듣는다. 생소한 단어가 나와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대화의 분위기와 공기 흐름을 읽고 얼추 끼워맞추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6년이 넘는 제주생활 동안 생겨났다. 그리고 교무실에 근무하며 온갖 제주어의 폭탄 속에 살고 있어 그 능력이 배가 되었다. 교장님, 교감님, 교무님! 50~60 평생을 제주어를 쓰고 사신 분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듣기 훈련을 했겠는가?  그야말로 지금 나는 제주도에 어학연수를 와있다. 서귀포 고향 출신 교장 선생님은 제주어 수준이 어나더레벨이신데 교장님이 쓰시는 찐제주어 중 '이 낱말은 참 귀여운걸?'하는 낱말이 몇 가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1. ~ 닮아: 여기서의 '닮다'는 모양이 서로 닮았다는 뜻이 아니다. 표준어로 풀이하면 '~같아.'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내일 비가 올 거 닮아.' 는 '내일 비가 올 것 같아.'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서 더 응용을 하면 '비가 올 거 닮아지게 운전 조심함쩌.(비가 올 것 같으니 운전 조심하세요.)'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2. ~고라줘: 지금은 교장님이 되셔서 다른 학교로 가신 교감님이 시도때도 없이 쓰셨던 말인데, 처음에 나는 왜 자꾸 교감님이 뭘 골라달라고 하시나 난감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쓰임을 파악해 보니 '~고라줘'는 여러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내일 시험 잘 보고 고라줘.(내일 시험 잘 보고 말해줘.)  "거기 지금 나온 것 고라줘.(거기 지금 나온 것 가져다 줘.) "자료 잘 고라서 감사 준비 해.(자료 잘 정리해서 감사 준비 해.)" 등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인다. 그저 상황에 따라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 밖에 없다. (댓글에 보니 '고라줘'의 정확한 뜻은 '말해줘'랍니다.)


  3. 주왁주왁: 얼마전 복도를 지나가는데 1학년 부장선생님이 1학년 아이를 붙들고 하는 말이 귀에 꽂혔다. 

"너 무사 집에 안 가고 주왁주왁하멘?"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후에도 그 선생님이 교무실에 오면 "애가 매일 주왁주왁하고 집에 안가요." 등 주왁주왁이라는 말을 자주 쓰셨다. 교무실을 나가는 선생님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도대체 주왁주왁이 뭐예요? 비가 주룩주룩 온다 밖에 저는 모르겠는데....." 내 말에 교무실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주왁주왁'은 제주어로 '기웃기웃'이라는 뜻으로 "너 무사 집에 안 가고 주왁주왁하멘?"은 "너 왜 집에 안 가고 기웃거리고 있니?"라는 뜻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제주어로 '주왁주왁'은 '주룩주룩'이 아닙니다.

  멀고도 먼 제주어! 이밖에도 생소하고 재미있는 제주어가 수도 없이 많지만, 제주도민 7년차 정도 되면 어느 정도 때려 맞출 수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제주도에서 제주인과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내가 제주도를 사랑해서일까? 처음에는 낯설고 촌스럽게도 느껴졌던 제주어가 요즘은 참 귀엽고 정감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는 제주어가 우리말의 보물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제주살이 7년차가 되었다고 제주말을 따라하려 하거나 제주사람처럼 보이고자 애쓰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한다고 해도 제주사람들은 단번에 어색함을 알기에 나에게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하려 한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이 나고 자란 제주도의 환경 문화, 그들이 쓰는 말을 더욱 사랑하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제주도를 진정으로 깊이 이해하는 방법일 것이다. 

  아직은 멀고도 먼 제주 어학연수 생활,

  완벽한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멀은 것 같다. 

  그래도 귀여운 제주어를 들으며 생활할 수 있어 행복하다.



('아꼽다'는 제주어로 '귀엽다'는 뜻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에서 만난 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