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교사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조그만 책방에 관심을 가져 보았고, 한달살이 주택, 바닷가 카페 운영 등 다른 일도 알아보았다. 글쓰기를 좋아해 관광회사 홍보일이나 여행작가를 꿈꾸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빠인 나는 다른 일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연봉만큼 맞추어 줄 수 있는 다른 직종이 있지 않았다.
교사는 절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다. 교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왜 교사가 되고 싶나요?"라고 물었을 때 "돈을 많이 벌려구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40대의 내가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때 지금만큼의 연봉을 줄 수 있는 직업이 의외로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제주도에서 '내려놓고 살기'를 연습하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다. 파이어족은 40초반에 은퇴를 목표로 20~30대 때 악착같이 돈을 벌고 절약하며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나는 40중반이니 이런 사전적인 의미대로라면 이미 늦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파이어족을 꿈꾼다. 교사라는 직업이 싫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싫어서도 아니다.(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날 정말 좋아한다. 진짜다~!^^) 내가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것은 내 인생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서이다. 제주도의 자연이 아무리 아름답다고해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조금만 물질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여유를 가진다면 제주도의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다. 서울에서 승진을 위해 내가 어떻게 일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의 생각이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꿈은 더욱 명확해졌다.
파이어족이라고 해서 조기은퇴 후에 무조건 놀고 먹기만 하는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을 80세라고 했을 때 인생의 절반을 학생과 교사로서 살았으니 남은 절반은 학교와 관계없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막상 "은퇴하면 뭐할건데?"라고 묻는다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고,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니 사진작가가 되고도 싶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캠핑카를 타고 전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명확해지겠지만 핵심은 내가 가진 시간을 온전히 날 위해 쓰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젊은 후배 교사들이 부럽다.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는 왜 저 나이 때 저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하며 놀랄 때가 있다. FIRE족을 꿈꾸며 일하는 젊은 교사들도 많다. 어떤 사람은 "젊은 사람들이 야망이 있어야지. 놀 생각만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얼른 경력 쌓고 점수 쌓아서 승진해야지."라고 충고할 지 모른다. 난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를 반박하고 싶지 않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나 잘하세요."이다. 이 세상 누구도 타인의 삶과 가치관에 대하여 판단하고 평가할 권리가 없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행복하다면 누가 뭐라해도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 흔들림없는 단단한 내면으로 자신의 인생에 자신감을 가지면 된다.
비록 40대 초반에 은퇴를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오늘도 FIRE족을 꾼꾼다.
내 인생의 참된 주인이 되는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