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딸과 단둘이 서울에 있습니다.
놀라셨지요?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제주도로 퇴근한다'며 세상 행복해 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이야.
제가 말했지요? 인생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가야금을 하는 딸이 작년 10월, 서울에 있는 국립전통예술중학교에 합격하고 아내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어린 아이를 혼자 서울에 어떻게 보내지?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금요일이면 나와야 하는데 제주도에서 매주 올라올 수도 없고 우리가 못오면 딸은 어디서 혼자 주말을 보내지?'
무엇보다 딸과 보낸 시간이 13년에 멈추어 버리는 것만 같아 혼자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와 저는 타시도 교육청 교류와 파견을 신청했고 저 혼자 파견이 성사되어 딸과 단둘이 서울 학교 근처의 오피스텔을 구해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딸과 단둘이 살 집은 복층구조의 오피스텔인데 딸은 2층방에, 저는 아랫층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올라온지 10일째, 매일 아침 밥해주고 연습실까지 태워다 주고 다시 태우러 가고 저녁밥 해주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딸아이의 매니저로 살고 있지요. 처음 3~4일 정도는 나름 재미도 있었는데 시간이 갈 수록 현타가 오고 우울해지는데 이러다가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집앞에 헬스장을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3월에는 학교도 개학을 하니 출근까지 하면 우울해 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아요.
딸이 제주도로 처음 이주한 때가 7살 때였는데 그때는 제주병에 걸린 아빠 때문에 뭣도 모르고 내려와 제주도 바다와 오름에서 하루종일 뛰어놀며 자연적으로 살았지요. 딸은 심지어 초등학교 내내 그 흔한 영어학원 한 번 다니지 않은 아이였어요. 저는 딸이 제주도의 자연과 어울리는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ebs 상상크리에이터'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야금 하는 아이편을 보고 갑자기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니 취미로만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요. 결론적으로 뭣도 모르고 제주도에 끌려갔다가 자신의 힘으로 서울로 올라왔으니 딸은 어차피 서울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나 봅니다. 요즘은 딸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가 7살 때는 아빠 때문에 뭣도 모르고 제주도에 갔으니까 이제는 아빠가 나 때문에 서울에 와있어야 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답답하고 싫어했던 서울, 그래서 평생 제주도에서 살 것이라고 다짐하고 떠났었는데 다시 돌아와 바라본 서울은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싫다기보다는 외롭고 서글프다고 해야 할까요? 누구 한 명 연락하는 사람 없이 하루종일 딸 뒷바라지만 하다보면
'내 인생은 뭐지?'
라는 회의감이 자연스럽게 찾아듭니다. 하지만 딸도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부모 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에 지금의 시간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에 어떤 아빠가 사춘기 딸과 이토록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분명 딸아이가 부모의 곁을 떠나면 이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입니다.
자식의 인생만 생각하니 내 인생은 없는 것만 같고, 그래서 서글프기도 하지만...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딸아이의 꿈을 지원해줄 수 있고 꿈을 이루는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계속 이렇게 딸바부팅이로 살까 합니다.
지금 딸과 단둘이 서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