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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Jun 08. 2021

제주도 초등학교 이야기(2)

나팔꽃과 오이

  나는 지금 교과전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학교에서 근무한지 꽤 되었는데 교과전담교사는 올해가 처음이다. 내가 맡은 과목은 1,2학년 '안전한 생활'과 3학년 체육이다. 교과전담교사를 하면 여러 학년을 가르칠 수 있어 좋다. 다른 선생님들의 학급을 살펴볼 수 있고 학급경영을 엿볼 수 있어 배울 것이 많다. 다양한 교실에 가보면

  '와!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나도 나중에 해봐야지.'

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담임교사로만 근무하면 내 방식을 고집하기 쉽고,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인데 전담교사를 맡게 되어 다행이다.


  오늘은 1학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1학년 담임교사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 교직경력이 최하 10년 이상 되는 베테랑 교사들이 담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유치원에서 올라온지 얼마 안되는 아이들에게 연필 잡는 방법부터 줄서기, 급식 먹기 등 기본생활습관, 학습습관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학년에 비해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기에 연륜이 있는 선생님들이 담당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 수업을 다녀오면 배우는 것이 많다. 나도 40대의 경력교사이기는 하지만 원로교사의 여유와 노하우를 따라가기는 아직 멀었다. 그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복도 창가에 놓인 아이들의 화분에 나팔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이 쓰여진 화분에서 자란 나팔꽃이 창가에서 천장까지 줄을 따라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예쁘게 핀 꽃이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꽃에서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연신 휴대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었다.

1학년 교실에 핀 아이들의 나팔꽃

  "여기 오이도 열렸어요."

  1학년 선생님 중 연배가 가장 높은 선생님께서 내 모습을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가니 정말로 아이들의 팔뚝만한 오이가 달려있었다.

와~~ 오이다! 저걸 먹을 수 있을까?

  "와~! 이걸 1학년 선생님들께서 다 꾸미셨어요?"
  창틀에서부터 천장까지 줄을 엮어 고정하고 줄기가 지나가도록 길을 내신 선생님들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졌다.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다. 모종을 심고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화분에서 천장까지 줄기가 뻗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어쩌면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지혜를 배우고 있지는 않을까?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사랑이 분명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의 현장학습이 멈추긴 했지만, 2년 전만해도 현장학습으로 수국이 핀 종달리 마을을 가고, 오름에 오르고, 김녕바다로 물놀이를 가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제주스럽구나.'

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현장학습으로 키자니아, 과학관, 박물관만 찾아다녔다. 현장학습 코스를 짜는 것 때문에 얼마나 머리가 아팠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제주도 전체가 자연친화적인 현장학습 장소이다. 제주도 아이들은 이렇게 자연과 가깝게 지낸다. 이토록 멋진 제주도에서 자연을 배우고 있는 우리 아이들, 분명 바른 인성을 품고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복도창가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나팔꽃과 오이가 제주도의 푸른 자연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심어놓은 화분을 바라보는 선배교사의 모습이 제주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멋진 교사로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 다행이다.

  제주도 교사여서 행복한 하루이다.

1학년 복도에 펼쳐진 녹색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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